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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명 Jan 21. 2017

[그림으로 읽는 이야기]
바다로 가고 싶은 코끼리 #9

다시 돌아오다

그렇게 소녀는 코끼리와 헤어졌어요.

소녀는 코끼리의 열정에 깊이 감동했지만, 코끼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정말 바다를 보지 못해도 괜찮은 걸까?'


맹목적으로 바다를 향해 가는 코끼리가 안타깝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어요.

소녀는 소녀의 꿈 상자를 바라보았어요.

소녀는 코끼리처럼 맹목적으로 걸어갈 용기가 없었어요.

<꿈을 이룬 자들의 마을>에 갈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꿈을 들고 있다는 것은 어리석게 느껴졌어요.


'어쩌면 내 꿈은 코끼리의 꿈보다 작은 것일지도 몰라.'



소녀는 결국 아무 답도 얻지 못한 채로 돌아왔어요.

고개를 떨구고 돌아오는 소녀를 앙상한 꽃나무가 맞아주었어요.


"소녀야, 돌아왔구나."


"응. 부끄럽게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네."


"그때의 넌 길을 떠나기 전이고 지금의 넌 다녀온 후잖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말뚝에서 벗어날 수도, 꿈을 버릴 수도 없었어.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렇게 돌아왔어."


꽃나무가 빙그레 웃었어요.


"많이들 그렇게 돌아오지."


"내가 돌아올 줄 알고 있었던 거야?"


"나는 묻었던 꿈을 파버린 사람들을 많이 보았어.

 그런 사람들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지.

 그렇게 돌아온 사람들은 다시 떠나지. 

 그러다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무슨 상관이겠어.

 꿈을 지니고 있고 두 발이 있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지 않겠니."



illust by 명은주



소녀는 다시 마을에서의 일상을 시작했어요.

고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함께 따뜻한 밥 먹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마음의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어요.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소녀는 짬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종이를 펴고 연필을 잡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울렁거렸어요.

그 울렁거림은 허전했던 소녀의 가슴을 가득 채워주었어요.



소녀의 방에서는 <꿈을 이룬 자들의 마을>이 보였어요.

소녀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꿈 상자를 어루만지면서 <꿈을 이룬 자들의 마을>을 바라보았어요.


가끔씩은 가슴이 너무 벅차고 울렁거려서 이룰 수 없는 꿈을 들고 있는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듯이 느껴졌어요.

그 감정을 느끼고 살 수만 있다면 <꿈을 이룬 자들의 마을>에 가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소녀는 바다로 향하던 코끼리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이제껏 소녀는 꿈을 이루지 못할까 두려워서 도망쳐 왔던 거예요.

꿈을 이루지 못하면 창피할까 봐 숨겨왔던 거예요.



illust by 명은주



[바다로 가고 싶은 코끼리 #10]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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