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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명 Feb 17. 2017

바다로 가고 싶은 코끼리 번외편
- 소녀의 이야기 #1

소녀가 받은 선물

이건 소녀가 소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는 소녀가 태어나기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그러니까 소녀가 최초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전인, 엄마 뱃속에서 꼬물 거리기도 전인, 탄생을 준비하던 시간의 이야기예요.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잊고 있던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아이는 물가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누군가가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죠.


아이는 물속에 손을 넣어 장난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이 곳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따뜻하고 친근하고 평화로운 이 곳에서 좀 더 머물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삶을 기대하는 마음이 공존했어요.


"아가야, 안녕?"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이는 고개를 돌려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어요.


"안녕하세요."



illust by 명은주



목소리를 낸 자는 아이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어요.


"나는 네가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안내자>란다.

 태어날 준비는 되었니?"


아이는 무릎을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네, <안내자>님. 

 준비되었어요."


아이는 <안내자>를 따라 걸었어요.

그들은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을 걸어서 한 동산에 도착했어요. 



illust by 명은주



"아가야, 너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다.

 이 동산을 올라가면 샘이 하나 있어.

 거기서 선물을 가지고 오렴."


아이는 동산을 올라갔어요.

동산은 꽤 높아서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곧 조그만 샘이 나타났고, 샘 한가운데 피어난 꽃송이의 꽃잎 사이로 물이 똑똑 떨어져 호리병에 담기는 것이 보였어요.



illust by 명은주



아이가 샘에 다가가자 돌인 줄 알았던 것이 불쑥 튀어나왔어요.


"이번 아이는 너로구나.

 자, 네 몫의 선물이다.

 가져가렴."


"이건 뭔가요?"


"여긴 시간의 샘이야.

 거기 담긴 건, 이번 생에 너에게 주어진 시간."



illust by 명은주



아이는 조심스럽게 호리병을 받아 들었어요.

병 안을 보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렸지만 입구가 좁아서 잘 보이지 않았어요.


"저어, 이 정도면 많이 받은 건가요?"


"나도 몰라.

 난 그저 시간의 샘에서 나오는 걸 받아서 주는 것뿐이니까.

 먼젓번 아이는 몇 방울밖에 받아가지 못했어.

 가슴이 아팠지.

 시간의 샘은 변덕스러워서 공평하게 시간을 주지 않아."



illust by 명은주



아이는 호리병을 감싸 안고 꿀꺽꿀꺽 샘물을 마셨어요.

시간의 물은 아이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아이의 몸속을 구석구석 채웠어요.


"귀하게 여겨 쓰도록 해라.

 허투루 쓰다가는 어느새 바닥을 보게 될 테니까.

 네가 가지고 태어나는 것 중 가장 귀중하다는 걸 명심해."




<안내자>는 이번에는 신비로운 과수원으로 아이를 데려갔어요.

과수원은 온갖 탐스러운 열매들로 가득했어요.

나무에서 열리는 것도 있었고 땅에서 나는 것도 있었고 꽃잎 사이에 달려 있는 것도 있었어요.


"아가야, 네게 주는 두 번째 선물이란다.

 바구니를 챙겨줄 테니 들고 다니면서 먹고 싶은 열매를 실컷 따서 먹으렴."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과수원을 돌아다녔어요.



illust by 명은주



[번외편 - 소녀의 이야기 #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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