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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명 Feb 17. 2017

바다로 가고 싶은 코끼리 번외편
- 소녀의 이야기 #2

소녀가 받은 선물

"열매 종류가 엄청 많은데 아무거나 먹으면 되나요?"


"유난히 끌리는 열매가 있을 거야.

 열매마다 각각 다른 성격과 재능이 담겨 있지.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으렴.

 이번 생에 넌 네가 먹은 열매들로 이루어진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 거야."


과연 <안내자>의 말대로 끌리는 열매들이 있었어요.

아이는 마음이 가는 열매들을 잔뜩 따서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어요.

바구니는 금세 바닥났어요.



illust by 명은주



"배불리 먹었니?"


"네, 실컷 먹었어요. 제가 좋은 걸 먹은 건가요?"


"좋은 거?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거 말이니?

 열매의 씨앗을 보렴. 한 면은 매끄럽고 한 면은 거칠지.

 모든 특성에는 양면이 있어.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수도 있지만 인생을 꼬아버릴 수도 있지."


<안내자>는 아이가 먹고 남긴 씨앗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빙그레 웃었어요.


"그 열매를 많이 먹었구나."


"이건 어떤 거예요?"


"너는 네가 보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볼 수 있을 거야.

 미세한 것까지 느낄 수 있으니까 남들은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에 크게 감동받고 인생을 더 깊이 생각할 수도 있겠지.


 반면에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부분까지 느끼니까 쉽게 상처받고 금세 지칠 거야.

 지나치게 예민해서 다른 이들이 너를 지지해주는지 의식하느라 스스로 원하는걸 제대로 보지 못할지도 몰라.


 말했듯이, 모든 특성에는 양면이 있으니까.

 장점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거지."


"그렇군요. 그럼 이것들은요?"


아이가 다른 씨앗들을 내밀었어요.


"아가야, 네가 가지게 될 것이 무엇인지 지금 아무리 설명해줘도 너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것들은 경험해 보아야 알 수 있고 너는 아직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분명한 건, 넌 많은 장점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거야.

 그것들은 자칫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고 오히려 너를 해칠 수도 있어.

 네가 태어날 사회에서 귀히 여겨주지 않는 것들이라면 더더욱."



<안내자>는 아이와 마지막 길을 걸었어요.


"아가야, 네가 스스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네 장점을 발휘한다면, 어쩌면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도 있겠다."


"그게 이번 생에 제가 할 일인가요?"


"살다 보면 수많은 일이 있을 거야.

 넌 말뚝에 묶이기도 하고 화살에 맞기도 하겠지.

 태어나서 넌 네가 받은 선물들을 모두 잊을 거고, 네가 선물을 받았다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을 거야.

 너 스스로 발견해야만 해.

 네가 발견하지 않으면 아무도 발견해주지 않을 테니까."


<안내자>는 걸음을 멈췄어요.


"내가 함께하는 건 여기까지야.

 넌 이제 이 길을 따라 쭉 걸어가서 문으로 들어가면 돼.

 문 앞에, 네 인생이 적힌 책이 있을 거야.

 궁금하면 읽어봐도 돼.

 어차피 태어나면 다 잊을 테지만."


"제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두 적혀 있는 건가요?"


"앞부분만.

 네가 태어나는 환경에 따라 어떻게 자라나게 될지 네 인생의 앞부분은 적혀있어.

 뒷부분은 네가 스스로 적어 나가는 거야."



illust by 명은주



걸어가는 아이의 뒤로 <안내자>가 소리쳤어요.


"아가야, 문을 통과하면 넌 모든 것들을 잊게 될 거야.

 그래도 내가 너에게 이 모든 걸 말해주는 이유는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아가야, 네 가슴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해.

 다른 사람 말고, 네 가슴이 외치는 소리를."


"네,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탄생을 축하한다 아가야.

 그리고 행운을 빈다."


아이는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문으로 들어갔어요.



아기 울음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소녀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세상에 태어났어요.

그렇게 소녀는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했답니다.






                                                                                                                    - [바다로 가고 싶은 코끼리]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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