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의 만남
터벅터벅 마을로 돌아가던 소녀는 바다로 향해 가는 코끼리를 만났어요.
"안녕, 코끼리야.
네가 바다로 가고 있다는 코끼리구나."
"안녕, 소녀야.
맞아, 난 바다로 가고 있어.
넌 어디로 가고 있니?"
"난 <꿈을 좇는 자들의 마을>로 가려다가 포기하고 돌아가고 있어.
내가 원래 살던 마을로."
"왜 돌아가는 거야?"
"내가 말뚝에 매여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
"코끼리야, 난 지금껏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막다른 길에 다다랐어.
말뚝에 매여있는 것을 알면서도 벗어날 수가 없어.
말뚝에 매이는 걸 선택한 사람들, 말뚝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 모두 잘 사는데 나만 힘든 것 같아.
네 친구 코끼리가 비겁한 게 아니었어.
적어도 스스로 선택한 길을 충실히 살고 있으니까.
비겁한 건 나였어.
지금 삶을 충실히 살지도, 말뚝 핑계로 떠나지도 못하는 나."
"소녀야, 네가 비겁한 게 아니야.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믿어온 가치들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야.
이리 와보렴. 네게 보여줄 것이 있어."
소녀는 코끼리를 따라 말없이 걸었어요.
"소녀야, 이 화살들이 보이니?"
"글쎄,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는 어디야?"
"태어난 모든 생명들이 걸어가는 길.
인생은 보이지 않는 화살이 빗발치는 전쟁터야.
어떤 화살에 맞으면 사고를 당하고 어떤 화살에 맞으면 병에 걸리지.
어떤 화살을 맞으면 애써 이루어 놓은 것들을 모두 잃기도 해.
어떤 화살의 상처는 금방 회복이 되지만 어떤 화살의 상처는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단다."
"이렇게 화살이 많이 쏟아지는데 불안해서 어떻게 살 수가 있지?"
"누가 언제 화살에 맞는지는 확률의 문제일 뿐이야.
피하려고 발버둥 쳐도 아무 잘못 없이 아무 이유 없이도 맞을 수 있는 것이 화살이지.
화살을 피하려고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겠지만
어느 날 내가 그 화살을 맞는다고 해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왜 내게는 이제껏 보이지 않았을까?"
"너는 아직 어리고, 이 화살들은 인생을 오래 살면서 수많은 화살을 맞아본 어른들의 눈에만 보이는 거니까.
인생을 오래 산 어른들은 알고 있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서서히 쇠퇴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가지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너를 사랑하던 어른들이 네게 발자국이 많은 길로 가라고 가르쳤던 건,
네가 이 화살들로부터 안전하기를 바랐기 때문일 거야.
꿈을 이루는 길이 평탄한 사람들은 행운이겠지만, 꿈을 이루는 길이 험난한 사람들은 걱정될 수밖에 없지.
그들 역시 걸어 봤던 길일 테니까.
네가 살던 마을에서는 화살을 덜 맞거나, 화살을 맞더라도 회복할 가능성이 더 높겠지.
그렇다고 화살을 모두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소중한 사람들을 그들의 방식으로 지키기 위해서 거기 있는 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