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처음 런던에 도착한 날. 튜브를 타고 숙소를 예약한 Eastham으로 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곳은 우범지역이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숙소의 정확한 주소와 post code, 호스트의 연락처는 스마트폰에만 저장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튜브와 버스를 타고 내리자마자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나가버렸다. 보조배터리 같은 건 없었다. 충전기와 멀티 어댑터는 캐리어 안 어딘가엔 있었지만 머리는 이미 백지장이었다. 오후 7시는 되었을까,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멘탈이 나간 채로 멀뚱히 서 있었다. 길거리는 휑했고 가끔 차가 한 대씩 지나갔다. 이곳은 내가 생각했던 빅 벤과 런던아이가 보이는 런던이 아니라 빨간색 네온사인의 케밥집이 보이는 남아시아의 어딘가 같았다.
다급하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어보려고 했다. 덩치도 컸고 뭔가 거칠어 보이는 백인 남성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유일하게 아는 정보인 'Ranelagh Road'를 연신 외쳐 댔지만 그 사람도 정확한 주소나 post code를 모르니 길을 알려줄 수도 없었다. 아마 모든 도로의 이름을 알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Ranelagh Road에는 수십 채의 집이 있었다. 외모와는 다르게 친절했던 그분은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하며 사라졌다.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었고 등줄기는 이미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캐리어를 끌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날은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