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ce Park Dec 19. 2019

Holey Is Holy 구멍은 신성해

예이츠 <미친 제인이 주교에게 이야기하네>

Crazy Jane Talks With The Bishop 미친 제인이 주교와 이야기하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길에서 주교를 만나

그와 나 오래 얘기했네.

'저 젖가슴은 이제 납작하게 축 처졌군.

저 핏줄은 곧 메마를 게야,

천국의 저택에 살게,

더러운 돼지 집에 살지 말고,'

'아름다운 것과 더러운 것은 가까운 친척간이지,

아름다운 것에는 더러운 것이 필요해,' 난 외쳤네.

내 친구들은 가버렸지만, 이것이야말로 무덤이나 침대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리네.

몸을 낮추고 가슴의 긍지로

배운 진리지.

'여자는 사랑에 열중하면

거만하고 뻣뻣해질 수 있지만

사랑은 배설 장소에

제 집을 짓는다네.

찢어지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하나가 되거나 전부가 될 수 없다네.'

I met the Bishop on the road

And much said he and I.

'Those breasts are flat and fallen now,

Those veins must soon be dry;

Live in a heavenly mansion,

Not in some foul sty.'

'Fair and foul are near of kin,

And fair needs foul,' I cried.

'My friends are gone, but that's a truth

Nor grave nor bed denied,

Learned in bodily lowliness

And in the heart's pride.

'A woman can be proud and stiff

When on love intent;

But Love has pitched his mansion in

The place of excrement;

For nothing can be sole or whole

That has not been rent.'

***************************************************

"찢어지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도 전부가 될 수도 없다네"

상처받지 않고 안온하고 평온하게 사는 삶이 좋지 않겠느냐고들 한다. 아마도 난 그런 삶은 거부할 것 같다. 일단은 무엇보다도 내 좁고 융통성 없음을 내가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니와 동생은 그렇게 산다. 삶의 굴곡 없이, 조용하고 착하게. 처음 사귀었던 남자들과 결혼해서 수십 년을 살고, 교회에는 또 열심히 나가서 봉사하고 기도한다. 나는 지루해서 한 사람과 수십 년을 못 살 것 같고, 또 성경 말씀을 공부할 때에도 아멘! 아멘! 대신에 왜요? 왜요?하고 끊임없이 물었다.  

솔로몬에게 임했던 하나님께서는 별 볼일 없는 내게도 임하셔서 물으셨다. 무엇을 주랴? 무엇을 원하느냐? 원하는 걸 주겠노라고. 아마 솔로몬보다 더 당찬 대답을 내가 했던 것 같다. 솔로몬은 왕국을 다스릴 지혜를 달라고 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그랬다. "당신, 당신을 주세요." 하나님은 상호작용을 하는 존재시다. 이렇게 고백을 하면, 엄청난 기운으로 꿈틀거리며 반응해 오시는게 느껴진다. 내가 아무리 못난 인간이라 할지라도, 가끔 하나님은 날 사랑할 수 밖에 없겠어, 라는 생각을 교만하게도 한다. 절대자를 격동시킬 만큼 강렬하게 내가 내 존재를 다 부려놓고 온 힘으로 부딪혀 들이받으니까. 어쩌실래요, 그게 내 전부인데, 받으실래요? 놓으라면 다 놓고 버리라면 다 버릴테니 어디 나랑 쇼부 좀 봅시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 앞에서도 저돌적이다.  

잠잠히 만지는 손길이 있다. 내가 격하게 쏟아내면 천천히 스며들 듯 날 달래시며 속삭인다. "나를 원하느냐? 네가 나를 담아낼 수 있겠느냐? 그럴려면 네 영혼을 찢어 늘려야 하는데, 그 찢어지는 아픔을 네가 감당하겠느냐?" 이런 말을 들으면 엎어져서 한바탕 엉엉엉 울고, 다시 추스리고 일어나서 찔끔찔끔 여전히 흐르는 눈물과 뜨겁게 메여 잠기는 목소리로 기어코 "네, 그럴게요." 대답한다.

솔직히 후회한다. 내가 왜 기꺼이 찢어지겠노라 대답했던가 싶다. 너무 힘들면 후회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보아도, 영혼이 갈망하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무엇을 이 삶에서 거친들, 능히 보다 높은 존재에게 가겠노라 원하는 것을 막으랴 싶다. 어느 영적인 존재를 따라 올라가 우주를 보았던 꿈에서는 내 지각 능력은 이 육신에 갇힌 지각이 아니더라. "덮였던 베일을 걷고 보게 된다"는 계시록의 말씀이 이런 거구나 싶은 그런 인식의 경지가 따로 존재하더라.

악마가 받은 영벌은 절대 변할 수 없음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가장 괴롭고 괴로운 순간에, 누군가 날 이 시공간을 잘라 영원히 그 속에 가두겠다고 한다면,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닐까 하는. 그리고 가장 괴로운 순간은, 철저히 '분리'된 순간이다. 사람들과 유대하며 연결되지 못하고, 사기 당하고 농락당하고 내동댕이쳐져서 심지어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원망과 아픔으로 하나님조차 부를 수 없는 단절감, 그게 바로 지옥이다.

찢어질 때 마다 어둠의 골짜기로 떨어진다. 그러나 찢어지지 않으면 절대자를, 나보다 큰 영혼을, 대타자(big other)를 담을 수 없고, 주체와 타자를 넘어 하나가 될 수 없고, 전부가 될 수 없는 법이라 믿는다. 그래도 힘들다. 내가 왜 감히 절대자를 달라고 청하고, 그를 담기 위해 기꺼이 찢어지겠노라고 했던가. 젠장.

 

매거진의 이전글 파워는 모두 공간화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