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노르웨이의 검은 황소인 까닭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거대한 행성이 하나의 생명체이고 인간은 그 위에 기생하는 기생체로 그린 어느 공상과학 소설을 읽고는, 내가 사는 이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짐승이고 나는 거기에 기생하는 기생체가 아닌가 하는.
그리고 당신과 내가 만난다는 일은, 두 기생체를 담은 두 거대한 짐승이 어루어지는 일이 아닐까하는 상상을 한다. 마치 그대 쪽 짐승이 달려와 내 짐승을 들이받은 듯, 그렇게 내 우주에 불쑥 나타나버려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하고, 그 충격에 놀라 이성이 마비가 되었는지 고장이 났는지, 그 다음에는 제멋대로 그대에 끌려가는 이 마음은 마치 거대한 검은 황소가 나를 실어 질주하는 듯 했다. 거대한 짐승에 속절없이 올라탄 작은 기생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하나의 짐승과 또 하나의 짐승은 그렇게 마주쳐 서로를 궁구히 모색하느니, 훑어보고 더듬고 핥고 온 몸을 떨어 뜨거운 숨결로 섞이기까지, 내가 이 짐승 속에 사는지 저 짐승 속에 사는지 헷갈리는 지경까지 하나로 겹쳐지고 뭉그러지기를 갈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로 흐드러짐에 있어 환희는 늘상 찰나일뿐.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그대라는 깊고 어두운 계곡에 내동댕이쳐져 있더라. 어찌 사랑이 변했는고 통곡을 하며 질질 울며 다녀봤자 계속해서 어두운 계곡 바닥인지라, 나는 내 짐승을 살리기 위해 그대라는 깊은 계곡에서 기어올라와야 했다. 마치 끝도 없는 심해로 수직 다이브를 해들어가는 그 매혹으로 그대에게 뛰어들었다가 심해 바닥에서 한껏 짜부러 들고서야 숨이 막혀 수면 위로 발버둥치며 올라오는 다이버 같다고나 할까. 심해어로 살 순 없음이었다. 당신 짐승 속의 비중과 중력은 내 짐승을 죽이더라. 그래서, 발바닥에 쇠굽을 박아 당신의 계곡을 기어올라왔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피를 흘리며 당신을 넘어서야 했다.
당신 속에 있을 땐 당신을 잃더라. 당신 속에 함몰된 여자는 더 이상 당신에게 여자도 아니더라. 당신이 내게서 아니 한 여자에게서 찾는 것이 나를 죽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