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니다드 바다에서 난생처음 스쿠버 다이빙 도전!
스노클링 하러 가자는 아주머니의 말씀을 따라 이 별장까지 따라오긴 했다만 일단 물과 나는,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 우리는 결코 좋은 친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 있던 작은 수영장에 다녔다. 집에서도 가깝고 학교 친구들도 함께 다녔기에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수영 선생님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옆 라인 친구들과 경쟁을 시켰고, 내가 그들보다 더 늦게 목표지점에 들어온 날에는 내 머리를 자꾸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선생님은 장난으로 그랬던 것이라고 할지 몰라도, 어렸던 나는 잠깐이라도 숨이 막히고 코와 귀로 물이 들어오는 그 순간들이 공포스러웠다. 그 탓인지 원래 있던 비염이 있던 탓인지 어쨌든 심한 중이염이 걸려서 수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로 다시 배워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지도 않고 다시 해본 적이 없어 나는 결국 수영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러던 중, 6개월 정도 잠시 캐나다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룸메이트였던 친구 세 명과 호스트 가족과 함께 작은 호수로 물놀이를 갔다. 아주 깊고 투명해서 호수 바닥에 있는 키 큰 나무나 식물이 맨 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호수 한가운데에는 수영하는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쉼터 같은 곳이 있었다. 룸메이트 중 한 명만 수영을 할 줄 알았기에, 내 친구와 나는 발이 닿는 곳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눈에 옆에 쓰러져있는 커다란 통나무 하나가 보였다. 아니, 만화에 보면 가끔 주인공들이 강을 건널 때 통나무 위에 타거나 걸쳐서 목숨을 부지하지 않는가. 친구와 나는 별생각 없이 그 통나무를 타고 호수 중앙의 쉼터까지 가기로 결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죽을 뻔했다. 정말 죽을 뻔했다. 알고 보니 실제로도 그 호수에서 1년에 한 번씩은 사람이 빠져 죽기도 한다고 했다. 만화에서처럼 통나무가 가만히 있고 우리가 발장구를 치면 중앙까지 쉽게 갈 수 있을지 알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물에 들어간 순간부터 나무는 가만히 있지 않고 빙글빙글 돌았다. 안간힘을 써 중앙 쉼터까지 가기는 했는데,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저히 나무를 타고 다시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수영을 할 줄 알던 다른 룸메이트 친구와 호스트 가족이 날 데리러 와서 양 쪽에서 나를 끼고 수영해서 뭍까지 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위험한 시도였다. 다른 사람을 데리고 수영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차마 몰랐다. 바닥 끝까지 보이는 호수의 깊이에 나는 공포심이 커져서 허우적대고 몸에 힘을 주고 옆에 친구들을 눌러댔다. 다행히 그렇게 크지는 않은 호수이기에 어찌어찌 뭍까지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헛구역질이 나왔다. 이후 며칠 동안 식욕이 없고 기운이 없었다. 수영을 못하는 다른 친구는 다른 사람에게 튜브를 빌려 데려왔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진작 이렇게 할걸, 하며 후회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무모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기억에 물에 직접 들어가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내가 쿠바 바다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후로 스노클링은 처음이다. 아주머니 아들이자 나를 데리고 바다에 간 아저씨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잠수를 했다고 하셨다.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낡아 보여서 믿음이 가지 않던 잠수 장비들이 갑자기 노련하고 연륜 있게 보였다.
우리가 찾아간 바다는 파도가 조금 치고 급격히 물이 깊어지는 곳이라 솔직히 무서웠다. 들어가기 전 바위에 앉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잠시 제정신이 들었지만 아저씨가 워낙 전문가이시고 구명조끼도 생각보다 튼튼해 보여서 괜찮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아저씨 손을 잡고 출발!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도 조금 걱정되었는데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괜찮았다. 바닷속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답고도 신기했다.
아저씨의 손짓에 따라 둥둥 떠서 여기저기 보는데 아래쪽에 아름다운 해초가 있었다. 아저씨가 갑자기 구명조끼를 벗고 내려가서 잠깐 만지고 올라오라는 표시를 하셨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조끼를 빼버리면 영원히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서둘러 손으로 엑스를 열 번 정도 그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좀 아쉽긴 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수면으로 올라오라고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시는 아저씨.
"산소통 해서 들어가 볼래?" "네??? 저 수영 못하는데요... 못해도 할 수 있나요?" 겁은 많은데 또 호기심은 그보다 더 많은 나는, 수영 못해도 할 수 있다며 하고 싶냐고 물어보시는 아저씨께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를 따라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가서 조금 기다리니 산소통을 가지고 돌아오신다. 각종 손가락 신호를 배우고, 호흡법을 배우고 아저씨가 산소통을 매시고 호스를 두 개 끼워서 아저씨 하나, 나 하나 입에 꼈다. 구명조끼는 벗고 아저씨가 뒤에서 나를 잡으시고 그대로 물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정말 무섭고 귀도 많이 아팠다. 산소통이 있다고 해도 바다에서 숨을 쉬는 것은 훨씬 묵직해서 덜컥 겁이 났다. 숨 쉴 때마다 나는 소리와 공기방울도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1분 정도 경과하니 적응이 되면서 긴장을 풀었다. 오히려 몸에 힘을 빼고 아저씨가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쉽게 하는 것이 내 안전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만약 아저씨가 물어보셨을 때 안 내려간다고 했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보드라운 산호초도 만져보고 큰 소라도 두 개나 건지고 아저씨는 나를 너무나도 안전하게 잘 잡아주셨다. 조금 허세를 덧붙여서 내가 인어가 된 것 같...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산소통이나 구명조끼 등 몸에 걸친 것 없이 가벼워서 자유로웠다. 바다는 부드럽고 고요했다. 나의 숨소리만 크게 들렸을 뿐.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소독약 냄새 폴폴 나던 동네 수영장. 옆 친구보다 빨리 헤엄쳐야 혼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두근거렸던 기억. 물을 손으로 세게 때리며 큰 소리를 내며 말했던 선생님. 자꾸만 위축되던 나. 그런데 이 바다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나는 자유롭고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바닷속을 누볐다. 작은 산호나 원래 있던 것들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헤엄쳤다. 가끔 아저씨가 만져보라는 것만 손가락을 대어보았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잠수를 해본 것이 진짜 처음이냐며, 이렇게 잘하면서 처음이라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농담하며 씩 웃으시는 아저씨. 나, 왠지 다시 수영을 배우고 싶다. 다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 기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