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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Dec 20. 2017

오리와 함께 점심을

그리고 아쉬운 이별의 밤

 스쿠버 다이빙 후 다시 별장에 돌아와서 바가지에 물을 떠서 대충 씻고 점심 식사가 준비되기를 기다렸다. 아직도 몸에 남은 찝찝한 짭짤함에 온 몸이 서걱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것도 잠깐이니까, 생각하면 뭐든 항상 참을만하다. 바다에 가기 전, 아주머니가 5 쿡(=약 5달러)에 점심 식사를 준비해주신다고 하셔서 흔쾌히 여기서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생선과 고기 중 고를 수 있었는데, 나는 생선을 택했다. 쿠바는 생선이 귀하니까!


 햇빛이 드는 의자에 앉아 몸을 조금 말리며 구경을 하는데, 음식이 준비되어가는 장면이 흥미롭다. 여기서 음식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던 야외 주방에서 아주머니 며느리가 뚝딱 솜씨 좋게 이것저것 내오신다. 사각사각 썰은 양배추와 토마토 샐러드에 바나나 튀김, 따뜻한 수프가 먼저 나온다. 역시나 콩 수프. 한국에서는 콩 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여기와 서는 이상하게도 콩 요리가 입맛에 잘 맞는다. 한 입 먹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짭짤하다. 쿠바 음식은 달고 짜고, 안 그래도 싱겁게 먹는 나에게는 간이 참 강하다. 그래도 바다 수영으로 힘이 빠져서 그런지 따뜻하고 간간한 국물을 마시니 온 몸에 힘이 도는 것만 같다.


 그때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내 발에 스친다. 깜짝 놀라서 식탁 아래를 보니 오리들이 그 밑을 지나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풉, 터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오리뿐 아니라 여기저기 강아지와 오리와 닭과 병아리와 저쪽 끝에는 아기를 밴 돼지까지 누워있다. 나는 이들 한가운데에 식탁을 펴고 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고. 모양새가 우습다. 이들의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 한 명이 덩그러니 껴있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도 그 분위기가 조화로운 것이 재미있다. 내가 이런 곳에 앉아있을 것이라고 몇 달 전에는 상상이나 했을까?


아저씨가 직접 구우신 생선 요리 짱짱


 나보다 미리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돌아와 낮잠을 자던 스페인 남자도 식탁에 합류를 했다. 불에 돌려가며 구운 생선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야들야들했다. 오랜만에 먹는 흰 살 생선이라 그 큰 생선 세 마리를 순식간에 뚝딱 해버렸다. 콩 수프도 싹싹 비우고 설탕을 한 바가지는 넣은 것 같은 달달한 커피도 호로록 마시니 단짠의 조화가 이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식사 후 아저씨께서 다시 바다에 들어갈라냐고 물어보셨는데, 내일은 까마구에이로 떠나고 싶었기에 트리니다드의 시내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아주머니와 아주머니 며느리와 함께 다시 시내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운 좋게도 마침 차가 있으신 아주머니 친구 분이 집에 들르셔서 차를 얻어 타고 돌아왔다.


 집 와서 샤워하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돌아오고 나중에 다시 아주머니랑 아주머니 며느리와 또다시 산책을 했다. 함께 사진도 찍고 동네 구경도 하고 돌아오는 길, 나의 다음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하니 아는 사람이 그곳에서 민박을 한다며 연락처와 주소를 알려주셨다. 귀찮으실 법도 한데 온 집안을 뒤져서 그분의 명함을 찾아내어 내 손에 쥐어주신다.


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동네


마을 중심의 공원, 나도 저 곳에서 오래 앉아있었다

 다음 날 일찍 나가야 했기에 미리 지불을 하려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치시면서 내일 하자고 하신다. 스쿠버 다이빙 비용은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여쭤봤는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며느리에게 상의를 하신다며 잠시 집으로 들어가시고는 다시 나를 다시 부르신다.


 그러더니 두 분이 하시는 말씀. "So(내 이름 발음을 못하셔서 이렇게 부르셨다), 너를 알게 된 것은 불과 이틀밖에 안되었지만 너는 우리에게 참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어. 앞으로도 연락하며 계속 지내고 싶어. 오늘 점심은 5 쿡인데, 스쿠버 다이빙 비용은 네가 내고 싶은 만큼 내. 넌 우리의 친구야."


 궁상맞게도 눈물이 날 뻔했다. 6개월 동안 외국인인 나에게 무언가를 얻어내려고만 하는 몇몇의 쿠바 사람들의 모습에 알게 모르게 지쳐있었는데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앞으로 여행을 하면서 다시 쿠바 사람과 이렇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나는 떠나야 함을 알았기 때문에, 나도 연락을 지속하고 싶고 잘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오늘 너무 즐겁게 스쿠버 다이빙을 해서 아주머니께서 편하게 가격 말씀해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두 분은 미소를 지으시더니 좋은 밤 되라며 내일 보자고 하시고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리셨다.


 방에 들어와 아주머니 가족께 감사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를 한다. 이틀 전 이곳에 처음 내려 아주머니를 따라 방에 들어왔던 것이 어쩌면 누군가 나를 위해 정해 놓았던 길이라는 생각을 한다. 위로와 온정과 새로운 경험과 그들의 사랑이 참 감사하다.

 

마지막 밤, 알록달록 트리니다드 마을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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