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걸릴 길을 10시간 걸려 까마구에이로!
트리니다드(Trinidad)에서 까마구에이(Camaguey)로 가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마음속으로 여러 번의 갈등을 했다. 버스를 타고 갈 것이냐, 까미온을 타고 갈 것인가. 사실 버스 타고 가는 것이 가장 몸은 편하겠지만 쿠바에 있는 6개월 동안 꼭 한 번 타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까미온! 까미온은 스페인어로 트럭이라는 뜻이다. 트럭을 버스처럼 개조한 까미온은 쿠바 현지인들이 많이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으로, 일반 버스보다 매우 저렴하다. 처음 아바나에서 까미온이 지나다니는 것을 봤을 때는 약간 충격이었다. 자그만 창문 틈 사이로 보이는 까미온에는 쿠바 사람들이 빽빽하게 차있었다. 앉은 사람도 있고 서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저걸 타고 몇 시간 거리도 다닌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했는데 와, 내가 10시간 동안 세 종류의 까미온을 타고 까마구에이에 갈 줄이야. 그때는 상상도 못했다. 아, 나중에 알고 보니 일반 버스 타고 가면 에어컨도 있고 5시간 반이면 도착한다고. 하하.
까미온(트럭)을 타고 이동하기로 결정하니, 민박집 아주머니가 아침 6시 반에 이웃 아저씨께 부탁을 해서 나를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셨다. 정류장이라고 해봤자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주유소 앞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커다란 트럭 한 대가 있었다. 아저씨는 먼저 '산티 에스피리투'라는 곳으로 가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고 하셨다. 앞에서 기웃대니 옆에 한 쿠바 청년이 아직 시간이 안 되었다며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사람이 채워지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출발하지 않는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봐도 나 포함 3명밖에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도착한 지 약 20분쯤 되었을 때 "산띠 에스삐리뚜 까미온-" 하니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도 꽁지쯤 따라가서 무사히 올랐다. 양 옆으로 금방이라도 부서질듯한 플라스틱 의자가 나있었는데 솔직히 쿠바 사람들이 앉기에는, 아니 한국 사람들이 앉기에도 조금 작은 의자였다. 내가 거의 마지막으로 앉고 그 뒤로 오른 사람들은 서서 가야 했다. 내가 괜히 쿠바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은 것은 아닌가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가 내게 꽂혔다. 중간중간 정류장이 꽤 있었는데, 아이를 데리고 타는 사람이 있으면 쿠바 남자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작은 틈 사이로 목덜미에 내리쬐는 햇빛이 뜨거웠지만 부채질도 하지 못할 만큼 공간이 없었다.
그렇게 두 시간 반쯤 갔나- 드디어 산티 에스피리투 도착이다! 조금 헤매다가 갈아타는 터미널을 무사히 찾아 친절해 보이시는 아저씨를 붙잡고 열심히 여쭤본 끝에 '시에고'로 가는 까미온에 올랐다. 알고 보니 그곳에서 한 번 더 갈아타야 한다고.
이 까미온은 구조가 더 독특하다. 차 내부에 쿠바 사람들이 있어서 실례가 될까 봐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나는 처음에 내 앞에 있는 것이 책상이나 물건 올려놓는 곳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도 의자였다.
자리를 잡고 앉은 지 한 15분 만에 출발한 것 같다. 처음에는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갈만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까미온이 제일 힘들었다. 햇빛도 너무 강하고 자리고 너무 불편하고... 나중에는 강렬한 쿠바의 태양을 피해 위쪽 의자에 걸터앉았는데 도로가 너무 안 좋다 보니 심하게 흔들려서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게다가 가방도 붙잡고 있어야 하니 꼭 돌덩이 하나 팔에 매달려있는 기분에 멀미까지 나려고 했다. 시에고까지는 금방이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다시 세 시간 정도 간 것 같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겨우겨우 내리니 까마구에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래 안 기다리고 갈아탈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어서 도착하고 싶다.
세 번째 까미온은 그나마 가장 버스다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일단 적어도 의자가 앞을 향해 나있었다. 가방을 앞에 맡기고 뒤에 의자에 앉는 방식이었다. 옆에 어떤 아저씨가 앉으셨는데 우리 자리에 너무 햇빛이 들자 나에게 출발 전에 잠깐 나가 있자고 하셨다. 나도 더 이상 햇빛을 견딜 수가 없어서 아저씨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시골 버스정류장같이 생긴 그곳에는 동양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이 한 명도 없었다.
땅콩 아저씨들은 커다란 박스를 목에 매고 "마니(땅콩)- 마니(땅콩)-" 외치며 구운 땅콩을 종이에 돌돌 말아 2 모네다에 팔고 계셨다. 몸이 힘든 탓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아침 7시부터 땅 한 조각밖에 먹지 못한 터라 배가 조금 고픈 것도 같았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읽으셨는지 옆자리 아저씨께서 나에게 마니를 사주셨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아, 이제야 제대로 된 의자에 앉았다 싶었는데 창문가에 앉은 나의 얼굴 위로 무언가 자꾸 뿌려진다. 뻥 뚫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비... 햇빛... 비... 번갈아가며 나를 괴롭힌다. 비가 생각보다 심하게 오자 아저씨들이 갑자기 여기저기서 천막을 내려 창문을 가려주신다.
어제 트리니다드 민박집 식구들이 까미온에서 절대 잠들지 말라고 했다. 언제 내 짐이 없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쿠바 현지인마저 이렇게 말하니, 더 긴장이 되어서 지금까지 잘 참았는데 밖에 비도 오고 빛도 없고 하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잘 잤다. 깨자마자 짐 생각이 나긴 했는데 앞을 슬쩍 보니 다른 짐에 파묻혀 내 짐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아예 보이지가 않았다. 그냥 잘 있겠거니 믿는 수밖에.
아아. 나는 사실 시에고에서 까마구에이까지 한 한 시간 반이면 갈 줄 알았다. 이제 도착인가-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 와서 멈추고 길이 안 좋아서 멈추고 아, 한 번은 버스에서 부품이 갑자기 빠져버려서 멈춰있기도 했다.
내가 분명 원해서 까미온을 탔던 것이 분명한데, 슝슝 달리며 내 곁을 지나가는 버스를 볼 때는 내가 이게 왜 사서 고생인가 싶기도 했다. 저 안에 타고 있는 외국인들은 내가 여기 이렇게 불쌍하게 있는 것을 알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나에게 까미온 경험은 이번 여행, 하루로 족한 것 같다.
한 세 시간은 더 걸린 것 같다. 내려서 또 얼마나 막막하던지... 시골로 오면 더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낯도 많이 가리고 무뚝뚝하다. 까사(민박집) 찾아가는 길도 관광지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예전에 있던 파라과이 빈민촌이 생각나는 비포장 도로라서 조금 쫄았지만 물어물어 그래도 잘 찾아 드디어 도착했다.
도착하니 5시다. 아침 6시 반에 집에서 나왔는데 꼬박 약 10시간이 걸렸다. 몰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까미온 경험은. 그리고 아직 체력이 되니까.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길래 순전히 호기심 충족을 위해 도전해본 것이었는데, 누군가 젊을 때 고생하면 골병든다 했던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