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웅 Sep 30. 2022

일상

대면강의가 없는 날에는 집에서 일한다. 나는 일층, 아내는 이층 각자의 오피스에서 일을 하다가 가끔 만난다. 아침은 따로 먹는 편이고 점심은 같이 먹는 편인데 미팅이나 바쁜 일이 있을  따로 먹을 때도 많다. 우리 둘이 미팅을  때도 가끔은 파일 공유 같은  위해 줌으로 하기도 한다. 같은 지붕 아래에 있어도 상당히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오후 네시 쯤이 되면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곧 있으면 애들을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다. 방과후 교실에 여섯시까지 있을 수 있지만 너무 늦게 가면 궁시렁대기 때문에 보통 다섯시쯤에 데리러 간다. 아내와 누가 갈지 협의를 한다. 같이 데려갈 때도 있고 바쁘면 한 사람이 간다. 애들이 올때가 되면 마음이 급해진다. 보통 일이 끝나지는 않지만 애들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일을 하기도 하고 그냥 바쁜 것만 쳐내고 다음 날을 기약하기도 한다.


애들 올 때를 기다리면서 해야 할 걱정이 또 하나 있다. 식사 준비다. 애들이 올때가 되면 약속이라도 한듯이 부부가 부엌으로 모여 뭘 먹을지를 고민한다. 매일 요리를 하는 것도 일이다. 요리가 너무 하기 싫으면 사 먹을 때도 있지만 보통 요리를 해서 먹는다. 둘이 같이 준비할 때도 있고 한 사람이 총대를 메고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요리 분배는 잘 되는 편이다. 오늘 밥상은 건강식으로 차려보았다. 얇게 저며 구운 소고기와 버섯야채볶음과 구이가 주 메뉴다. 참기름과 간장을 뿌린 차가운 순두부도 같이 내었다. 우리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나이가 들어갈수록 깨닫게 된다. 함께 공유하는 음식과 시간 그 자체가 주는 소속감이 상당한듯하다. 외로울 수 있는 미국 유학생활을 견딜수 있었던 것도 가족처럼 지낸 사람들과 함께 쌓은 밥정이 아닌가 싶다. 음식 자체도 그렇다. 우리 아이들이 경험하는 한국의 상당 부분은 엄마, 아빠가 해주는 한국요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엄마가 해준 김밥, 아빠가 해준 김치찌개, 엄마가 해준 계란말이, 아빠가 해준 갈비찜 이런게 아이들이 느끼는 한국과 문화 그 자체가 아닐까? 가끔 우스갯소리로 음식을 해 주면서 나중에 배우자를 데려오면 "daddy's famous 뭐시기"를 해 주겠다고 말해주면 아이들이 상당히 재밌어 한다. 나중에 내가 담근 김치 싸들고 애들 집에 가야지. 엄마에 비해 내가 엄청 잘 놀아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맛있는 것을 먹이고 이곳 저곳에 데리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내 사랑을 표현한다.



저녁 시간은 꽤나 빠르게 흘러간다. 오늘 같은 경우는 애들은 저녁먹자마자 이웃집에 놀러갔다. 근데 옆집은 일곱시면  준비를 해서 삼십분만 놀고 돌아왔다. 갔다와서 막내는 첼로 연습을 하고 첫째 나랑 동네 한바퀴를 뛰러 갔다. 요즘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사실 고작 일마일씩 뛰는 거라 조금 부끄럽다. 보통 뛴다는 분들은  십킬로씩은 뛰시니까 말이다. 근데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는 가랑이 찢어진다고  페이스대로 그래도 꾸준히 뛰기로 했다. 오늘 처음으로 아들과 같이 뛴건데 기분이 뭔가 뭉클했다. 앞으로 자주 같이 뛰어야겠다.


 시간이 가까워 오면 양치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아이들이 씻는 패턴을 보면 각자의 개성이 극명이 드러나는데 첫째 아이 집에 오자마자 빨리 샤워하고 잠옷으로 갈아입는데 엄청 신속하다. 반면에 막내는 샤워하 들어가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데  이유가 내일 입을 옷을 고르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이기 때문이다.  아홉시면 각자의 방에 들어가 눕고 엄마, 아빠가 번갈아가며 기도해주고 나면 잠자리에 든다. 사실 아이들이 우리랑 같이 자기를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 각자의 방에서  자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안방을 쟁취했다.


미국 생활은 가족 뿐이라는데 정말 가족 뿐이다. 박사 졸업하면서 그것을 정말 많이 느낀다. 복작복작 재밌게 지냈던 유학생 커뮤니티를 벗어나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비록 한국 사람 하나 없으며 총인구가 만명도 되지 않고 한국 사람을 찾거나 직장에 가려면 차도 안 막히는 고속도로로 한시간 정도는 가야 하는 농촌 마을에 살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 네명이 함께 있으니 그걸로 complete하다.


그나저나 가을이 왔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