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위해 한국에 와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새삼스레 생소하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명절이었다. 필리핀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지냈던 명절의 기억과는 사뭇 달랐던 것은 아무래도 더 이상 조부모님들이 살아계시지 않았다는 것과 부모님과 같은 나라에 살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보통 명절 전날에 이모 댁에 갔었던 것 같고 이모 댁은 큰집에 가셔야 하니 나 혼자 있다가 그 다음 날 혼자 큰 집에 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생각보다 갈 곳이 없는 나랑 비슷한 처지의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행사에 간다던가 했던 것 같고 말이다. 결혼하고서는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부모님은 같은 나라에 살고 계시지 않았지만 처가집 부모님이 계셨고 함께 하는 가족이 생겼다. 그리고 쉬는 날이 넘쳤던 대학생 때와는 다르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맞게되는 연휴는 달콤했다.
다시 타국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 명절은 그냥 여느때 같은 평일이었지만 미국 명절들이 있었다. 낯선 문화나 명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음 둘 곳이 딱히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첫 해엔 그랬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생겼다. 펜실베이니아 칼리지 타운 시골에서 늘 식탁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신앙을 나누는 가족같은 사람들이 생겼다. 이유가 있을 때도 이유가 없을 때도 만났다. 여행을 함께 가고 맛있는 걸 먹으러 함께 돌아다녔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가 졸업이란 걸 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도 틈틈이 만났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미국치고는 꽤나 가까운 곳에 살게 되어서 더 쉽게 왕래하게 되었다. 그렇게 명절에 만나는 가족들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