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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웅 Jul 23. 2020

교육공학과 학습과학 (러닝사이언스): 두번째 이야기

한국어로 이 두 학문을 "교육공학"과 "학습과학"으로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두 학문 모두 번역된 한국 단어로 담을 수 없는 미묘한 구석들이 있습니다. 먼저 교육공학의 경우 의외로 영문명이 Education Engineering이 아닙니다. 사실 학교별로 교육공학의 학과명이 제각각인데 보통 사용되는 명칭이 Instructional Technology, Instructional Systems, Instructional Systems Technology, Educational Technology, Learning Technologies, Instructional Design and Technology 등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중에 Education Engineering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 미묘한 한국 번역 단어에 대해서는 여러 썰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에도 관련해서 간략한 설명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여기서 정식으로 정의를 내리진 않겠지만 위 영문 단어들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교육공학은 교수설계와 교육기술을 다루는 학문이다"인 듯싶습니다.


이에 반하여 Learning Sciences (러닝사이언스)를 학습과학으로 번역하는 것에는 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지만 이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학습과학으로 번역시에 놓치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수형입니다. 학습과학은 Learning "Science"가 아니라 Learning "Sciences"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썰이 존재하고 통일된 의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의 뇌피셜이지만 학습과학이 복수인 가장 큰 이유는 학습과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다양한 관점들과 학문적 전통들을 기반으로 한 여러 학문들의 "집합"이라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것도 깊이 파고 들어가면 답이 썩 속 시원하지 않습니다. 현재 국제 학습과학회 회장으로 섬기고 있는 Victor Lee 교수에 따르면 학습과학에 대한 여러 질문들이 있는데 그 어느 것 하나도 분명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질문들의 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 종류의 학습과학이 존재하기 때문에 복수인가 아니면 한 종류의 학습과학이란 분야가 있는데 단순히 복수를 쓰는 것인가?"
"학습과학을 설명할 때 L과 S를 대문자로 써야 하는가 아니면 소문자로 써야 하는가?"
"학습과학이란 분야가 전통적인 교육심리학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인가?" "
"학습과학의 범위가 지적인 현상으로서의 학습을 넘어서는가?
"학습과학이 정말 과학인가?

Learning Sciences라는 영문명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나올 수 있고 또 그러한 질문들을 쉽게 답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무쪼록 이 글이 이 두 분야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교육공학과 학습과학, 이 두 분야 모두 학습과 학습기술을 설계하고 학습자를 공부하며 학습환경을 구축하는 연구들을 하기 때문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두 분야 간 대화가 생각보다 많지가 않습니다. Kirby, Hoadley와 Carr-Chellman이 2005년에 한 문헌 연구가 있습니다. 비록 상당히 오래된 연구이긴 해도 이 두 분야 간의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저자들은 각기 분야를 대표하는 학술 문헌들을 세 가지씩 선정하고 이 문헌들의 인용 횟수를 분석하였습니다. 결과는 이 두 분야가 교육 기술(요즘 핫한 단어로 "에듀테크"라고 불리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인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의 분야를 인용한 경우는 0.4-0.5%였고, 저자들 중 2.3%만 두 분야에 글을 게재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물론 이 논문이 나온 때로부터 15년이 흘렀고, 교육공학계열 학과에도 학습과학자들이 많이 고용되면서 지금은 좀 더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전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 같은 하이브리드가 양쪽 학회에 가보면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좀 더 딱딱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학교 다니면서 들은 썰에 기반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수업 중 하나에서 교육공학의 시작은 전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기들이 고도화되면서 무기 사용 방법이 어려워졌고, 보다 빠른 무기 사용법 숙지를 위해서 체계적인 교수방법이 필요했다 뭐 이런 이야기입니다. 생사를 오가는 전쟁판에서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다 빠르고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필요가 발생했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 시청각 자료들을 사용하게 되고 시청각 자료들이 기술들로 치환되고 뭐 그런 흐름인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뇌피셜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공학을 지칭하는 단어 중 하나인 "Instructional Technology"의 Instruction (교수)이란 단어가 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교수설계 중심의 전통적인 교육공학은 제가 느끼기에 좀 더 체계화된 설계와 분석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학습과 학습자에 대한 이해도 학습환경의 설계라는 측면에서 보게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산업에서도 쉽게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학습과학은 좀 더 젊은 학문인데, 이것도 들은 썰에 의하면 학습자들의 학습을 증진시키기 위한 새로운 분야의 필요를 느낀 인지과학자, 컴퓨터과학자, 교육심리학자 등 여러 분야 사람들이 모여서  90년대에 으쌰으쌰해서 만든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 이미 교육과 기술을 연구하고 있던 교육공학이 있었음에도 교육과 기술을 연구하는 또 다른 분야를 만들게 된 거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비슷한 도메인인데도 연구 방법론들과 초점이 교육공학과 좀 다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쉽게 일반화될 수 없는 특정한 맥락과 도메인에 대한 연구들도 많고, 아이들과 가족들에 대한 연구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Design-based research (설계 기반 연구)라는 방법론을 많이 씁니다. 이 방법론에 대해서는 추후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비추어 조금 무리수를 두어 설명해 보자면 교육공학은 지식과 스킬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전달에서 시작해 기술과 학습에 대한 이해로 흘러갔다면, 학습과학은 인간의 학습과정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해서 학습을 위한 기술의 적용으로 흘러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시작점은 달랐지만 기술로 강화된 학습환경 구축을 통한 학습 증진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말씀드리는 것처럼 두 분야 간의 차이가 점점 옅어지고 있고, 현재의 많은 연구자들은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 계신 것 같습니다.



원래 지난 글에서 교육공학과 학습과학 관계에 관한 몇 개의 논문들을 통해 소개해 드린다고 말씀드렸는데 글이 예상외로 길어지다 보니 다음 글로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면 가볍게 쓰는 글이기도 하고 일개 교수의 의견인 만큼 너무 그대로 받아들이시지는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참고문헌 


Kirby,  J. A., Hoadley, C. M., &  Carr-Chellman, A. A. (2005).  Instructional systems design and the  learning sciences: A citation  analysis. Educational technology research and development, 53(1), 37-47.


Lee, V. (2018). A Short History of the Learning Sciences. In  R. E. West (Ed.), Foundations of Learning and Instructional Design Technology. EdTech Books. Retrieved from https://edtechbooks.org/lidtfoundations/history_of_learning_sc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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