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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웅 Jul 10. 2020

교육공학과 학습과학 (러닝사이언스): 첫번째 이야기


오늘은  제가 몸담고 있는 두 분야인 교육공학과 학습과학(러닝사이언스/Learning Sciences)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사실 해당 전공자가 아니시면 관심이 없으실  이야기지만 상대적으로 국내에서 잘 알려진 교육공학에 비해 학습과학에 대해서 다룬 글들은 많지 않기에 문서화 차원에서는 의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서로 다른 학문들이 시대가 지나면서 같은 도메인을 연구하게 되면서 서로 교류하게 되는 경우가 다른  분야에서도 흔한 만큼 관련 없는 분들도 가볍게 읽을 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저의 학문적 정체성에 관련된 이야기로 글을 시작 해 볼까 합니다. 대학에서 가르친다고 하면 많은 분들께서 제  전공을 물어보십니다. 시간이 없거나 잘 모르는 분들께는 그냥 전산학과 교수라고 말씀드리지만 보통은 “HCI를 가르치고 있지만 실제  전공은 교육과 기술 쪽이다”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가 길어질 때가 많은데 일단 HCI 자체도 생소할 뿐더러 왜  교육을 공부하는 사람이 전산학과에 있는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실제 박사 학위명도 애매모호한 Learning,  Design, and Technology이니 설명이 짧을 수가 없습니다. 학부 전공, 석사 전공, 박사 전공이 각각 다르고 셋 다  학제적이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보면 그냥 팔자인가 싶습니다. 혹시 궁금하실 분이 있을 까 하여 영양가 없는 사족을  붙이자면 저는 학부 때 바이오융합학문을 표방한 “바이오시스템학과”(현재는 바이오 및 뇌공학과로 학과명 변경)를 졸업하고 석사 때는  “인지과학협동과정”에 입학해 세부전공으로 HCI를 전공하였습니다.


학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하는 영어 표현으로 “by train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어느 학문적 배경에서  공부했는가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같이 특정 주제에 대한 학제적인 접근이 빈번한 상황에서 더욱 적절한 것  같습니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HCI 분야의 학자들 같은 경우 자신의 배경에 따라 Computer  Scientist by Training, Psychology Researcher by Training, Industrial  Designer by Training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학자, HCI과정 교수, 학습과학자, 교육공학 연구자 등 학자로서의 저를 수식할 수 있는 많은 단어들이 있겠지만,  저는 보통 자기 소개를 할 때 Learning Scientist by Training이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보통 한국에서  교육과 기술을 연구한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교육공학을 떠올리실테지만 학습과학 분야의 연구자들도 교육과 기술을 연구합니다. 저는  교육공학계에도 몸을 담고 있긴 하지만 박사과정 기간 동안 받은 교육, 훈련 및 학술 활동이 학습과학 쪽에 더 치중되어 있는 관계로  학습과학자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것이 마음에 더 편한 것 같습니다.


교육공학과  학습과학, 이 두 분야는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오늘은 그 차이점에 대해서 다뤄볼까 합니다. 저는 이 두 분야의 영향을  모두 받은 편에 속하는데요 제가 공부했던 학교가 교육공학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 학습과학으로 사실상 전환을 한 곳이라 저  나름대로 정체성 확립의 시간을 거치면서 이 둘의 차이에 대해서 나름의 결론을 세운 바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경험만 나누기에는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오래 됐지만 2000년대 중반에 발표된 논문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상대적으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육공학에 비하면 학습과학의 역사는 짧은 편입니다. 그 시작은 보통 1991년으로 보는 것 같은데, 이  해에 처음으로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최초의 학습과학 박사과정이 생겼고 Journal of the Learning  Sciences라는 관련 학술지도 탄생하였습니다. 인지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컴퓨터 과학자, 교육 심리학자 등 다양한 배경의 학자들이  학습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 학습과학입니다. 학습의 이해와 기술의 적용이란 부분에서 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교육공학과 겹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간의 교류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저의 뇌피셜인데  지금과 다르게 대학 내 학습과학 학위과정이 없는 상황에서 많은 학습과학 전공자들이 이미 성숙했던 학문인 교육공학관련 학과에 많이  임용이 되면서 그러한 교류가 더 많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펜실베니아주립대도 그런 곳 중 하나인데 교육공학 전통을  가진 학과에 학습과학자 두명을 임용하면서 대화를 시작한듯 보입니다. 그것의 산물중 하나가 2004년에 Educational  Technology라는 저널에 발표된 스페셜 이슈입니다(https://www.jstor.org/stable/i40186146  참고). “학습과학과 교육공학: 대화의 시작”이라는 제목의 스페셜 이슈를 통해 당시에 (사실 지금도) 유명했던 해당 분야의  대가들과 신진학자들이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각각이 이해하는 학습과학과 교육공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논문들을  다루면 좋겠지만 여러모로 그것은 어려울 것 같고 몇몇 논문들의 개략적인 이야기만 다뤄볼까 합니다.


지금이  2020년도이니 이 논문들이 나온 때로부터 14년이 흘렀고 두 분야간의 교류가 더 빈번해지긴 했지만 논문들에서 거론된 이야기들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만 해도 학생 시절 읽었던 대부분의 논문들이 학습과학 쪽 대가들의 논문들이었던 지라  상대적으로 교육공학 쪽 대가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또 심지어 최근에 참석했던 학회에서는 교육공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모르는  학습과학 전공 동료들을 보며 깜짝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교육공학 쪽에서도 학습과학 쪽 학회나 저널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아직 서로간의 교류가 엄청 활발하지는 않다는 방증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도  분명 존재하긴 합니다.




학계,  분야, 학과 등 학문을 구분하는 많은 용어와 표현들이 있겠지만 교육공학과 학습과학을 구분하는 단위로 제일 적합한 단어는  “Academic Community”인 것 같습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학문 공동체”인데 뭔가 어색한 것 같지만 공동체보다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네요. 학자들은 각자의 공동체에서 서로의 연구결과를 학회나 저널을 통해 나누며 자신의 공동체를  발전시킵니다. 재밌는 건 이러한 공동체가 꼭 상호배타적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학문 공동체를 구분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Hoadley (2004)는 학습과학자는 교육공학과 학습과학이라는 두 “연구 공동체”를 구분하는 특색으로 네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  번째는 연구 범위와 목표 (Scope and Goals)이고 두 번째는 이론적 토대 (Theoretical  Commitments), 세 번째는 인식론과 방법론 (Epistemology and Methods), 네 번째는 학문적 역사  (History)입니다.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네 가지가 언급된 논문을 중심으로 교육공학과 학습과학의 차이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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