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학풍을 “학문에서의 태도나 경향"라고 정의되어 있네요. 간단히 생각해서 특정 주제에 대한 스탠스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같은 분야의 학자들이라고 해도 분야 내 각각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적용하는 이론적 배경이나 연구 방법론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학풍은 생각보다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학풍을 달리 표현하면 관점(Perspective)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관찰, 해석, 적용이 모두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학습과학(Learning Sciences)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습과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학습"을 다루는 만큼 무엇이 학습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수적이고, 이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은 크게 학습을 바라보는 두 관점에 대해서 나눠볼까 합니다. 사실 이 두 관점은 방대하고 깊게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최대한 가볍게 다루려고 합니다. 지나치게 일반화를 시키다 보면 놓치거나 틀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은 감안하시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다행히 2018년에 출간된 International Handbook of the Learning Sciences라는 책에서 한 챕터를 이 두 관점에 대해 다루고 있어 (챕터명: Cognitive and Sociocultural Perspective on Learning: Tensions and Synergy in the Learning Sciences; 저자명: Danish and Gresalfi),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뼈대삼아 이 두 관점들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를 해 드릴까 합니다.
학습과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학습에 대한 학제적 접근을 근간으로 하는 분야인 만큼, 학습과학 연구자들은 다양한 이론을 바탕으로 여러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학습과정을 이해하고 설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 중 기본이 되는 학습에 대한 이론적 관점 두 가지가 바로 인지적 학습이론과 사회문화적 학습이론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두 관점 중 하나를 따르고 있고, 그 관점에 따라 상대 관점을 가진 학자들과 대립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만큼 이 두 가지 관점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물론 이 두 관점이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적절히 혼용해서 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잣대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인지적 관점과 문화사회적 관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지적 관점이 개별 학습자의 Mental Process (번역 단어가 확 와 닿지 않아 부득이하게 영어식 표현을 쓰겠습니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문화사회적 관점은 학습자들이 특정 상황 (context)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자들이 사회적 행위의 참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전자는 학습과정을 개인의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지과정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학습과정을 특정한 상황/환경 내에서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행위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지적 관점은 개인의 인지과정에 초점을 둡니다. 주로 인지과학 관련 이론들에 기반을 두고 있고 최근에는 뇌과학 관련 이론들이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주변 환경과 독립적인 인지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통 관련 연구들은 재현가능한 인지과정을 모형화 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실험을 통해 여러 변수들을 통제한 상태에서 보고자 하는 변인들만 관찰하는 연구 방법론을 주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 보면 환경은 통제해야 할 변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최근 몇십 년 간 연구들로 인해 이러한 관점에도 변화가 생겼는데요. 개인의 지식이 세상을 인식하고 세상과 상호작용 하는 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많이 나오면서 환경과 개인의 인지과정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몸과 지식에 대해 다루는 “체화된 인지"라는 주제도 분야 내에서 심도 깊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인지적 관점에서는 지식의 전이 (여기서 전이란 배운 것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를 위해서는 개인의 지식이 범용성을 가질 수 있도록 추상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개인을 강조하는 만큼 내재적 동기에 방점을 찍는 경우가 많고요.
반면에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는 말 그대로 개인의 학습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개인이 사회문화적 맥락과 상호작용하며 얻어지는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결과물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즉 인간의 모든 행위를 인간의 환경 (예: 역사, 문화, 배경, 언어, 행위 등등)과 떼어 놓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관점에 따르면 인간의 지식의 근본은 개인이 몸담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행위들로부터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 방법론 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해당 관점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들은 모든 변인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실험 대신에 (일반화 되지 않은) 특정 환경에서 학습자들을 좀 더 가깝고 깊게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질적연구 방법론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 관점에서는 개인을 개인이 처한 환경과 분리하지 않기 때문에, 학습의 전이에 있어서도 개인의 추상화된 지식이 다양한 상황에 대응되어 전이된다기 보다는 개인이 처해진 다양한 맥락들의 overlap이 전이를 가능케 한다고 봅니다.
인지적 관점에서 보자면 학습은 철저히 개인을 위주로 벌어지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해당학자들은 개인의 학습 과정에 대한 다양한 인지 모형을 만들고 그 모형을 통해 개인의 학습을 증진시키고자 합니다. 이러한 모형들은 모형에 영향을 줄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통제한 후 검증되기 때문에, 인지적 관점에서 행해진 연구들은 환경과 개인차에 국한되지 않고 쉽게 일반화 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위해 여러 맥락 요소들을 제거하다보면 실제 학습 환경에 적용시키가 어렵다는 단점도 존재합니다. 반대로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행해진 연구들은 어떤 특정 맥락에서 행해진 개인의 학습 과정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맥락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일반화 시키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미국 도심지 빈민층을 위해 설계된 프로그램을 맥락을 무시한 채 한국의 시골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 과점의 간극을 상당히 멀어 보입니다만 이것이 하나를 선택하면 또 하나를 버려야 하는 상황인 것인가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 두 관점은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야 할 관점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관점의 스펙트럼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한 관점에 올인 하시는 분들도 있을테고 상황에 따라 스펙트럼을 오가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학습과학 내에서도 때로는 이 두 관점이 대립하기도 하고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엮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학문이 발전해 나갑니다. 사실 학습에 있어 개인의 인지과정을 무시할 수 도 없는 노릇이고, 맥락과 환경을 무시하고 독립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학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이 모두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Danish, J. A., & Gresalfi, M. (2018). Cognitive and sociocultural perspective on learning: tensions and synergy in the learning sciences. International handbook of the learning sciences, 3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