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저는 학습을 공부하는 학자입니다. 학습에 대한 내용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또 학습에 관하여 연구한 것들을 글로 쓰면서 먹고사는 지식 노동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 관련 글을 쓰는 것이 제일 부담스럽습니다. 전공 관련해서 쓰는 글들은 제 생각과 남의 생각을 구분하고, 남의 생각을 재해석해서 인용하고, 자가검증도 빡세게 해야 하고... 뭔가 맘 편히 쭉쭉 써 나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구석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조심조심 쓰다 보면 재미가 없어지는 느낌이랄까요?
여름 방학을 맞아 시간이 조금 난 김에 전공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 졌습니다. 쓰고 싶어 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대중에게 제 분야를 소개해 드리고 싶기도 했고, 머릿속에서 애매하게 뒤섞여 있는 여러 개념들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논문을 좀 더 맛깔나게 써 보고 싶은데 못 쓰는데서 나오는 일종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생각하는 학습과 학습과학에 대해서 제 멋대로 생각나는 대로 끄적끄적거리기로 했습니다. 혹여 틀리는 것들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많은 대중에게 있어서, 특히 한국인들에게, "교육"이란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뭔가 물리학, 경제학, 전자공학 이러한 학문들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는 아니다 보니 개인의 의견을 가지기도 싶고 모든 사람들이 일종의 "교육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에 투영할 거리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입이라는 인생 최고 이벤트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논란이 많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학은 사실 전 국민이 전문성을 가진 국민 스포츠 아니 학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교육학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교육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알고 계시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교육학이란 말은 공학이라는 말과 비슷한 위격의 단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너 뭐 전공하니?" "응, 나 공학 전공해."라고 하지 않듯이 엄밀히 말하면 교육학 전공이란 말은 굉장히 두루뭉술한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학이란 "교육"이란 주제/도메인을 다루는 학문들의 모임입니다. 교육을 다양한 학문적 도구를 통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해석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루는 것은 다 같이 교육을 다르나 접근 방법이 다른 것이지요. 가령 교육 심리학에서는 심리학적인 기법과 이론을 가지고 교육을 바라보고 교육 정책학에서는 정책학과 경제학 그리고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교육을 연구합니다. 교육공학이나 학습과학은 인지과학, 심리학, 기술의 측면에서 바라보고요. 세부적인 주제에 따라 나뉘기도 합니다. 언어교육, 과학교육, 사회교육 등 교과목 별로 중점을 두는 사항이 다를 수도 있고 기반이 되는 이론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저는 수많은 교육학 내 분야 중에서 학습과학과 교육공학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학습과학과 교육공학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어볼까 합니다). 좀더 쉽게 설명드리기 위해서 제 학위명을 말씀드리면 Learning, Design, and Technology입니다. "학습, 디자인 및 기술"이 제 학위명입니다. 한국어로 써 놓으니 참 밑도 끝도 없어 보이네요. 조금 더 설명해 보자면 사람들이 어떻게 학습하는 지를 공부하고 사람들이 더 학습을 잘 할 수 있도록 기술과 교육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을 학습자를 중심에 두고 생각합니다.
학습이란 무엇일까요? 지난 2년 동안 저는 HCI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전공 대학원생들에게 HCI와 학습에 관계에 대해서 가르쳐 왔습니다. 전반적인 과목의 이름과 수업 내용은 다르지만 제가 첫 시간에 보통 하는 게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학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해 도표를 그리게 합니다. 원래 교육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보통 비슷하게 도구적인 측면에서의 학습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 학습이란 배울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방면에서 맹활약한 학자 허버트 사이먼이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The meaning of 'knowing' has shifted from being able to remember and repeat information to being able to find and use it."
그의 말마따나 저도 현대 사회에서 안다는 것의 의미는 더 이상 정보를 기억하고 반복하는 것을 뜻하기 보다는 정보를 찾고 사용할 줄 아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손 끝 하나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정보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사실이나 지식을 머리 속에 잘 저장하는 능력보다는 우리 주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지식들을 활용해서 주어진 문제를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거죠. 물론 이 말이 암기와 지식 습득을 배격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앞으로 자세히 다루고 싶은 내용이긴 합니다만 제가 엄청 좋아하는 이론 중에 Distributed Cognition (메타인지) 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뿐 아니라 한 인간이 주변 환경 (사물, 타인, 정보 등) 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과정을 인간의 인지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핸드폰을 갖고 정보를 찾는 과정은 단순히 우리가 핸드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이 핸드폰을 통해 확장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많은 학습 이론들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Metacognition (메타인지), Communities of Practice (지식 공동체), Constructivism (구성주의), Constructionism, Cognitive Apprenticeship 등 저희 분야에서 많이 거론되는 이론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맺겠습니다. 시작 및 소개 글이다 보니 두서가 조금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좀더 나아지길 희망해 봅니다. 아무쪼록 학습과 학습과학에 대해서 가볍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