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연구 공동체"를 구분할 수 있는 네 가지 특성으로 연구 범위와 목표 (Scope and Goals), 이론적 토대 (Theoretical Commitments), 인식론과 방법론 (Epistemology and Methods), 그리고 학문적 역사 (History)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드디어 이번 글에서 호들리(2004)의 논문을 통해 이 네 가지 특성에 기반한 교육공학과 학습과학(러닝사이언스/Learning Sciences)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해 볼까 합니다.
연구 범위와 목표
일단 가장 큰 공통점은 흔히 요즘 에듀테크로 표현되는 교육기술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교육공학의 경우 그 목적을 학습 증진을 위한 효과적인 시스템 구축에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시스템을 잘 구축하기 위해서는 교수자료나 조직 레벨 내지는 시스템 레벨의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고, 교육기술은 이러한 시스템 구축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학습과학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게 교육기술을 비롯한 학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학습 환경을 다루는 만큼 교육기술을 중요시합니다. 학습과학에서 기술은 모든 학습에 필수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만능키로 인식되기보다는 각각의 맥락과 상황에 맞게 다르게 적용되어야 하는 교육 환경의 요소 중 하나로 인식됩니다. 이와 같이 교육기술을 시스템의 한 요소 내지는 교육환경의 한 요소로 본다는 측면에서는, 두 학문의 간극이 크지는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과 목적을 이루는 측면에 있어서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두 학문 모두 Educationist 즉 학습 증진의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저자는 교육공학의 경우 근본적으로 디자인/설계 중심의 학문이기 때문에 조정주의자(Interventionist)의 역할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학습과학의 경우 더 나은 조정(Intervention)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직접적인 조정보다는, 학습 이론들을 세우고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더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저자는 교육공학자의 대가인 라이거루스와 학습과학자의 대가인 콜로드너의 말을 빌어 두 학문 간의 간극을 표현하고 있는데 교육공학의 경우 각각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교수 방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수"이론에 중점을 두는 반면 학습과학은 설계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환경에서의 학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습"이론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론적 토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이론적 차이로 인한 간극도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교육공학의 경우 구성주의를 강조하는 학자들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교수설계 모델에서 벗어난 움직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또한 학습과학의 경우, 구성주의적 사고는 학계 전반에 깔려 있으나 인지적 구성주의 모델과 사회문화적 구성주의 모델 (이전 글 참고)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고 말입니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시작했지만 두 학문 모두 구성주의적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인식론과 방법론
호들리의 논문이 쓰인지도 15년이 흘렀습니다만 이 때도 이미 방법론적 변화가 많이 일어났던 시점이었습니다. 저자는 (글이 쓰인 시기로부터) 15여 년 전부터 그러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수행자(Doer)와 사용자(User)를 명확히 구분하는 과학적 연구 방법론이 대세였기 때문에 실증주의를 기반으로 한 실험 방법론 등이 주가 됐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행자와 사용자 구분이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고 그에 따라 연구 방법론도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됐든 간에 두 분야 모두 맥락과 디자인을 고려한 방법론을 통한 연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흐름의 결과물 중 하나가 Design-Based Research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문적 역사
두 학문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서는 예전에 잠시 다룬 바가 있기 때문에 (https://brunch.co.kr/@1pyun1shim/5) 여기서 따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두 학문의 시작이 상당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겹치는 지점이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호들리가 제공한 이 네 가지 틀로 살펴본 것처럼 교육공학과 학습과학은 참 다르면서도 비슷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차이가 있긴 합니다. 사실 학회의 분위기도 다르고 펀딩 소스도 다르고 관심을 가지는 학습의 대상도 다를 때가 많습니다.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로 느꼈던 차이점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학문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저자는 그 가능성을 위에도 언급된 Design-Based Research라는 방법론에서 찾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Design-Based Research는 맥락을 배제한 이론들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태동한 방법론으로서, 보편적이면서도 맥락에 따라 수정될 수 있는 디자인 기반의 이론들을 반복적인(iterative) 연구 프로세스를 통해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것에 관해서도 추후에 다룰 예정입니다. 소개해 드린 논문의 마지막 문단으로 마무리를 대신할까 합니다.
The nature of design knowledge - the idea that it can be about many contexts while implying some sort of customization or application for each individual setting - suggests that we need to be training a new generation of educational technologists who can blend research and design. It is only when our models of learning are just general enough, and design and research can inform each other, that we will be able to, as Lagemann suggests, create "usable knowledge" (Lagemann, 2002), that is, knowledge that helps us not only as scientists, but as educationists. (Hoadley 2004, p.11)
Hoadley, C. M. (2004). Learning and design: Why the learning sciences and instructional systems need each other. Educational Technology, 44(3), 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