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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백일호 Apr 15. 2024

벚꽃과 캠퍼스 - 나의 가장 만발한 때, 오늘

덜 힘들게 살고 싶은 나를 위해

24.04.03 작성. 


    오늘만은 지옥철을 피해 보고자 일찌감치 학교 도서관에 와 작업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한낮의 지하철도 지옥철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모두 사무실에 있을 것만 같은 평일 대낮에도 어디서 이렇게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딜 향하는지. 벌써 직장을 다니지 않는 프리랜서 5년 차가 되었는데도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나는 내가 회사를 다닐  땐 평일 낮 시간이 마치 한가한 놀이공원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줄을 서지 않아도 탈 수 있는 짜릿한 놀이기구, 그러나 주말과 같이 미소와 친절로 나를 맞아주는 직원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학교에 도착했다.      

Pixabay / HeungSoon


    한바탕 비가 쏟아지려는지 봄 공기는 무섭고 습했다. 캠퍼스 가득 핀 벚꽃은 습기를 먹은 채 만발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캠퍼스 교정을 밟은 지도 벌써 두 학기 짼데도 아직까지 도서관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언덕길을 조금 더 올라가 뒷길을 통해 쭉 가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항상 시간에 맞춰 쫓기듯 수업에 들어가니 도서관 갈 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누군가의 설명을 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반쯤은 학부생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러나 거기부터가 진짜 난관이었다. 어느 도서관으로 들어가야 할지부터 도저히 모르겠는 게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막둥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자다 일어났는지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동 대학 학부생인 동생에게 어느 도서관으로 가야 하냐고 물었다. 새삼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가 떠올랐다. 새내기 동기들과 처음 책을 가슴에 품고 삼삼오오 도서관으로 몰려가던 그날의 기억이 묘한 화장실 내와 오래된 서가 냄새가 섞인 도서관을 잠시나마 싱그러움으로 가득 채웠다. 그땐 우리도 아직도 여고생 같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Pixabay / StockSnap

    

    도대체 어디가 노트북 사용 가능 구역인지를 몰라 한참을 헤맸다. 알고 보니 서가 열람실은 전체가 노트북 사용 가능 구역이었다. 나의 학부 시절엔 노트북 사용 가능 구역이 전체 열람실의 반의반도 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라 가벼운 격세지감을 느꼈다. 내가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를 진심으로 사용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동안은 그 단어는 나에게 그저 농담 같은 거였다. 


    날씨 때문일까, 문득 모든 것이 아득히 먼 옛날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축축히 젖은 날씨에도 뽀얀 자태를 자랑하는 만발한 벚꽃 같은 시절은 다신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그때, 동생에게 톡이 온다. 학교 온 김에 저녁 좀 사달란다. 그리고 대학원 동기들에게도 톡이 온다. 끝나고 한잔하잔다. 한바탕 쏟아질 것 같던 비는 안 오고 날씨가 개기 시작한다. 시간은 오후 6시를 향하는데 마치 오전 6시 같은 상쾌한 기분이 든다. 도서관 창문 밖에서 새가 지저귀는 상쾌한 소리가 들려 온다. 어쩌면, 나의 가장 만발한 때는 오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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