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OO고등학교 1학년 9반에서 생긴 일(하)
누구에게도 속지 않을 거라는 마음으로 엉뚱한 실수를 해버렸던 그날, 수업은 아주 원활했다. 아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을 들었고 시간은 오전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교실 벽시계의 분침이 정확히 위를 가리킬 무렵 어디선가 소리가 났다.
드드드드드..
놀란 나는 강의를 멈추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교탁 옆 책상 서랍 안이었다. 여러 개의 핸드폰에서 동시에 진동 알람이 울린 거였다.
"어머, 이게 뭐야?"
그때 중앙에 앉은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만화의 한 컷이었다면 그 아이 얼굴 옆에 이렇게 쓰여있지 않았을까 싶다.
'씨익'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아이는 우렁차게 외쳤다. 오른손을 위로 번쩍 들었는데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가자! 영토 확장이다!!!"
우와아아 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나머지 아이들도 벌떡 일어났다. 저마다 빗자루, 쓰레받기, 먼지떨이개 등을 의자 밑에서 꺼내며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웃겼다.
참신한데?
복도로 나가 아이들의 행선지를 살폈다. 복도를 돌다가 돌아오겠지 싶었는데 아이들의 목적지는 8반 그러니까 남학생반이었다. 당시 수학 수업 중이던 8반의 뒷문을 벌컥 열고 아이들이 달려들었다(고 한다). 앉아있는 남학생들을 밀쳐내고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그렇다. 그녀들은 기어이 영토 확장을 한 것이다.
아이들은 8반 수업을 하던 선생님에 쫓겨 돌아왔고 다른 반 수업까지 방해한 죄목으로 나를 포함한 여기저기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근데 나는 사실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약간 선을 넘은 바는 있었지만 용인될 수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나를 사로잡은 대목은 아이디어의 훌륭함 즉, 과목 맞춤형 이벤트를 펼쳤다는 점이었다.
당시 국사 시간에는 한창 삼국 시대를 배우고 있었으니,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앙집권국가로 성장해 가면서 벌인 '영토 확장'은 이번 단원의 키워드라 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나이스 타이밍일 수가 없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건을 능가하는 만우절 이벤트를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얘기를 매년 만우절마다 써먹는데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이 빵빵 터진다. 썰을 풀 때면 다시 그 순간을 겪는 것처럼 짜릿하기까지 하다. 그때 그 아이들이 벌써 서른 중반일 텐데. 다들 그때처럼 씩씩하게 잘 살고 있기를. 아마 그때도 말했겠지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줘서 정말 고마워! " (2024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