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유어게인
나는 곱슬머리다.라고 첫 문장을 쓰고는 이게 문법에 맞는 표현인가 검색해 봤다. '곱슬머리란 고불고불하게 말려 있는 머리털. 또는 그런 머리털을 가진 사람’이라는 설명을 보고는 안심한다. 호기심이 생겨 대머리를 검색해 본다. ‘머리털이 많이 빠져서 벗어진 머리. 또는 그런 사람’이란다. 둘 다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다는 것. 그렇다면 생머리는? 궁금해서 찾아보니 ‘파마를 하지 아니한 자연 그대로의 머리‘라고만 적혀 있다.
어째서 생머리는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외형적 특징이 그대로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는 그 특성이 약점에 해당될 때가 아닐까 싶다. 언어란 필요에서 나오는 바, 관심거리 내지는 놀림거리로 자주 지칭될 필요가 있어야 비로소 외모의 특징이 존재 자체를 갈음할 수 있을 터. 당장 대머리의 반대말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만 봐도.
곱슬인들은 공감하시겠지만 곱슬머리로 산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불편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부스스한 곱슬머리라면 머리에 얽힌 애환이 없을 리가 없다. 국민학생 때만 해도 머리를 길러 묶을 수 있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귀밑 1센티라는 규정 때문에 댕강한 단발머리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나의 수난은 시작되었다. 물기가 마르면 부풀어 오르는 머리는 수습이 안 됐다. 그나마 최선을 다한 결과가 둘리 머리였다.(그림자만 보면 영락없는 둘리)
찰랑한 생머리를 휘날리는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당시 ‘스트레이트 파마‘라는 것이 있었지만 학생이 무슨 파마냐며 반대하시던 부모님 때문에 내겐 먼 얘기였다. 그러다가 난생처음 드디어 그 스트레이트 파마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하교하고 돌아와 엄마 앞에서 꺼이꺼이 울었던 직후였다.
그날따라 조금 늦게 하교하게 됐는데 운동장 저 멀리 서있는 학생주임 선생님이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고불거리는 내 머리가 문제가 된 것이었다. 가까이 불러 세우고 보니, 순진해빠진 내 얼굴에 의심(파마한 거 아닌가)을 거두었을 것이고 아마도 자기 딴에는 멋쩍어서 농담으로 뱉은 말이었을 텐데 그게 문제였다. “야, 넌 머리가 왜 그렇게 라면 같냐…‘”
혼나는 줄 알았다가 농으로 넘어가자 일단은 안도감이 들었고, 라면 같다는 비유도 함께 있던 친구와 웃고 넘겼는데 막상 집에 와서 엄마한테 그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들었던지 울어버리고 만 것이다. 엄마는 속상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데리고 당장 동네 미용실로 갔고 무려 삼만 원이나 값을 치르고 나에게 스트레이트 파마를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생머리를 찰랑 거릴 수 있게 되었냐면, 아니었다. 파마는 일주일도 못 가 금세 풀려버렸으니까.
스트레이트 파마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앨범 속 둘리 머리를 보면 웃기면서 짠하다. 머리만 찰랑거렸어도 인생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시선을 거둘 뿐. 여하튼 그렇게 곱슬머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던 내 삶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십 년쯤 지나 과학 기술의 발전 덕분이었다.
아이롱 펌이라는 신식 미용 기술이 등장하면서 그 어떤 악성 곱슬도 생머리로 변신할 수 있게 된 거다. 지금도 생생하다. 교생 실습을 나가기 몇 주전 설렘을 안고 친구들과 이대 앞 미용실을 찾아가서 아이롱 펌을 했던 날. 찰랑거리기는 하되, 너무나 볼품없이 얼굴에 달라붙어버린 모발을 직면하고 당황스러웠던 순간이. 그리하여 앨범의 한구석에는 젖은 미역을 널어놓은 머리를 하고선 찍은 사진들도 남게 됐다. 아, 서광은 비췄으되 아직 아침은 오지 않았다.
이후 솜씨 좋은 헤어 디자이너들을 만나 뿌리 부분의 볼륨은 살리면서 머리를 마술처럼 쫙 펴는 이른바 볼륨매직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었고 지난 십 수년간 꾸준히 볼륨매직을 하면서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해 왔다. 실은 젖은 미역머리에서 바로 넘어온 것은 아니고 한동안 차라리 곱슬의 개성을 살려 보자 싶어 웨이브파마를 반복했지만 머릿결이 상하니 시도할 수 있는 폭이 줄었고 결국 돌고 돌아 볼륨매직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미용실 찾아 삼만리’를 끝없이 반복했고 운 좋게 잘 맞는 분을 만나면 정착해 몇 년은 걱정 없이 지냈었다. 갑자기 나의 곱슬머리 인생사를 주절거리게 된 것은 지난 4년간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알아서 마음에 들게 척척 머리를 해주던 디자이너 선생님이 이번주까지만 일하고 그만둔다는 황망한 소식에 마음이 허전해서다.
4년 전, 이 동네로 이사오자마자 미용 관련 어플을 통해 평점과 재방문율이 높은 디자이너를 찾아내서 남편에게 추천했다. 남편이 하고 온 머리를 보고 이어 나도 예약을 해서 처음 방문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쭉 4년이었다. 매번 남편과 따로 예약을 해서 각자 다니다가 일 년쯤 지났을 때 미용실에 함께 나타나 ”저희 부부예요. “ 했을 때 깜짝 놀라던 반응에 다 함께 웃었던 기억도 있다.
한참을 공들여 머리를 자르고 꼭 거울로 길이와 모양을 확인시켜 주고서야 마무리를 했고, 뿌리의 볼륨을 살리되 부스스한 곱슬은 깔끔하게 펴주는 그녀의 실력은 믿음직했다. 내가 머릿결 손상에 특히 민감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모발이 상할 것 같으면 그 점을 꼭 짚어줌으로써 시술을 말리거나 자주 영양 서비스를 해주었다. 탄탄한 실력과 다정한 단골 대우에 만족해서 나도, 남편도 다른 미용실을 갈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앞머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을 때 ‘어머 고객님 안 돼요. 앞머리 자르면 후회하실 거예요.’라고 말리기보다는 “아.. 그러면 가운데 부분만 짧게 해 보고 마음에 드시면 다음번에 전체적으로 앞머리를 만들어볼까요?”라고 조심스레 제안을 함으로써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지켜주기도 했다. 덕분에 ’앞머리는 안 되는 거였어 엉엉.‘하며 낭패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두고두고 고마운 일이다.
새로 자라며 점점 부풀어 오르는 머리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 오늘 낮에 뿌리 볼륨매직을 하러 갔다가 갑작스레 이별 통보를 받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처음엔 아무 말도 못 했다. 나중에서야 ‘그동안 알아서 머리를 잘해주셔서 정말 좋았는데 떠나신다니 너무 아쉽다, 새로 자리 잡으시면 꼭 연락 주시라, 아주 먼 데가 아니라면 꼭 가겠다' 라고 마음을 전했다. 할까 말까 했던 말이었다. 혹여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은 아닌지 자기 검열을 하느라고.
요즘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지 말자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면 그런 행동은 하지 말자’가 되겠다. 언젠가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유리벽에 스스로를 가두고 억지스럽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에도 없는 친절이나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선행은 자괴감만 낳을 뿐이다.
오해는 마시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적어도 그 방향을 향해 걷고 싶다. 다만, 코스프레를 하고 싶지는 않은 건데 둘을 가르는 것은 진심 여부다. 잠시 지난 4년을 돌아보며 내 진심을 확인했다. 진심에 따른 행동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 이전에 나에게 꼭 ’ 필요’한 행위다. 평소에는 서로 잡담 없이 조용히 머리를 했었는데 지난 4년 중에 오늘 가장 많은 말을 했다. “저도 이제 고객님의 니즈를 확실하게 알게 되어서 잘해드릴 수 있는데 아쉬워요”라며 쓸쓸하게 웃는 그녀의 말도 진심 같았다.
만남과 이별에 대한 수사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의 구절이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거울 앞에서 그녀를 다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때 꼭 말해주고 싶다. “다시 만나서 참 좋아요.” (202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