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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프로세코 May 07. 2020

사무라이 노즈

여기는 백인 인구가 79% 차지하는 곳이다.

미국 워싱턴주 밴쿠버 시내. 타이거 어쩌고 하는 커피숍에 들렀다. Nana와 애인 그리고 나 셋은 향이 좋은 커피 한잔씩과 블루베리 스콘을 주문하고 앉았다. 이 커피숍은 주위에 있는 농인학교의 학생들에게 커피기술을 가르쳐 훈련하고 고용하는 곳이었다. 창가에 앉아 쏟아지는 햇볕을 맞으며 맛있게 커피를 즐겼다. 할머니는 곧 걸려온 아들의 전화에 오랫동안 통화하셨고, 지루해진 나는 일어나 커피숍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법랑 머그잔이 마음에 드는군. 커피빈은 여기서 사가면 여기서 먹는 것과 같은 맛이 날까. 살 생각은 전혀 없는데 그냥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살짝 시선을 돌린 순간이었다. 백발의 백인 중년, 아니, 할아버지가 내게 다가오더니 나의 마스크가 아주 독특하고 아름답다며 칭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뭐라고 반응을 해야할 지 몰랐다. 아 감사합니다. 이러고 있는데, 할아버지는 내 얼굴의 25cm정도 거리에 서서 내 얼굴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You have a Samurai's nose."


내 인생에서, 여행을 다닌 어디에서도 이렇게 어이없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어이가 없다 못해 그냥 웃겼다.

내가 한국인이란걸 알고 나서인 후였다. 그에겐 사무라이든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다 같은걸까.


사무라이 코라... 대체 어떻게 생긴 코이길래.. 그러더니 자기가 보았던 사무라이 영화와 사무라이 사진을 대조하며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친근하고 친절한 투로 해맑게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하는 걸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자리를 뜨고 싶은데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 지 몰랐다. 할아버지의 말은 끊기질 않았다.


이번엔 자신의 핏줄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아이리쉬, 스웨디쉬, 절먼, 스코티쉬 어쩌고 저쩌고.

나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지만 당신이 밝힌 나의 정체성에 부합하기 위해 코앞에서 그의 핏줄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성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아니 좀 집착적으로 그렇다. Caucasian들의 경우에 더욱 그 집착성이 크다.

이민 국가라 그런건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광적으로 자신이 10% 스웨디쉬, 5% 아이리쉬 라고 떠들고 다니는 건.. 재밌는 현상이다.

멈추지 않는 이 할아버지한테서 나를 좀 꺼내달라는 의미로 옆에 있던 애인을 끌어왔다. 이번엔 애인에게 장황한 대화를 끌어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전화통화가 드디어 끝이 났고 핑계거리가 생겼다. "할머니한테 가봐야겠어요."

그의 마지막 말도 잊히지 않는다.


"You are a very lucky man."

당신이 뭘 안다고 애인한테 주제넘는 말을 할까.

이상한 사람들은 많다. 어디에나 있다.


나는 집에 와서 사무라이의 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체 뭐길래 내 코같대?'


비슷하기는 커녕.. 그 할아버지의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당시에는 기분 나쁨이 컸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백인 할아버지의 무지함, 어이없음, 오만함에 그냥 웃음이 난다.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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