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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프로세코 Sep 04. 2018

백인들이 디폴트

우리 생활 곳곳에서 마주치는 백인 우월주의, 데일리 레이시즘



뉴질랜드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채 안된 햇병아리 시절, 일요일에 열리는 타카푸나(Takapuna) 시장에 구경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일요일에만 열리는 이 로컬마켓은 채소나 과일 각종 먹거리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불필요한 것이나 이삿짐 정리로 처분하고 싶은 물건을 장에 내놓을 수 있는 플리마켓 형식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파머스마켓과 플리마켓의 조합이라... 당연히 있을 것 같은 곳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돌이켜보면 이런 곳은 본 적이 별로 없다. 서울의 동묘시장과 망원시장이 함께 붙어 있다고 상상을 하면 되려나. 아니다, 그건 또 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아. 적절한 규모에서 이상적인 조합의 그림이 나온다고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면 웃기기도 한, 하지만 화도 나는 일을 봐 버리고 말았다. 일상 잡화를 판매하는 한 중고 상점. 키가 큰 한 아시안 아저씨가 그 상점의 샤워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샤워기 포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곧 상점의 주인인 백인 키위(뉴질랜드 사람들을 부르는 애칭) 여성에게 뭐라고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목소리를 낮추었던 그가 무안해지게 그녀는 그의 말을 되새겼다.


Made in China니까 조금 깎아달라고?  
너도 Made in China인데 너도 (질이) 나쁘니?


상점 주위에 있던, 이 말을 들을 수 있는 가청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놀란 눈치였다. 나 역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아저씨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주인 여성. 거기에 아저씨가 소심하게 한마디 했다. 자신이 중국인이 아니며 한국인이라고. 그것도 두 번이나 이야기해야 했다. 그녀가 듣지 못했기에. 이 여자는 멋쩍었는지, 발에 큰 힘을 주어 휙 하고 뒤를 돌아 자신 앞에 보이는 이번엔 한 아시안 남자아이에게 한 마디 더 붙였다.



You are made in China, are you bad?
너도 중국에서 왔는데, 넌 네가 나쁘다고 생각하니 꼬마야?



누가 이 여자를 제발 좀 말려주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이 사람은 끝까지 자기가 어떤 무지하고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녀와 공감하지 않는 나까지도 부끄러워지는 장면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같은 백인이었으면 더더욱. 아이가 갑자기 맞은 불똥을 시원하게 치워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소년의 어머니였다. 그녀가 나서 무지한 상점 주인에게 외쳤다.



He is Kiwi!
얘는 뉴질랜드인이야!



이상하게 이 장면들이 흥미진진했다. 누군가 나타나서 그녀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었으면 하고 있었는데 시원한 한방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깨달은 것인지 아직도 그녀의 좁은 문화 세계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Oh, that's great! That's really great!
오 그래? 좋다 좋아. 뉴질랜드 사람이라니!



그녀는 끝까지 했다. 정말 끝까지. 멈추어 자신이 한 말을 되돌아 보고 사과를 할 기회는 이 짧은 시간 안에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지만 끝까지 이상하고 무언가 꼬여있는 발언들을 해서 주위 사람들을 당황케 했다. 어쩌면 그녀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저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뉴질랜드인이라 댓츠 그레잇이라니, 그녀의 여태껏 발언 행태를 보아서 이중 긍정의 이 말에도 무언가 뼈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

1) 그녀는 한 아시아인을 보고 당연히 중국인이라고 지레짐작했다.

2) 자신이 틀렸음을 알았음에도 또 뒤돌아 한 아시안을 보고 중국인이라고 지레짐작했다.

3)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범세계적 공산품에 대한 품평을 사람에게도 적용했다.

4) 뉴질랜드 인이라 그레잇 그레잇을 외치며 우월감인지 멋쩍음을 표현했다.

(이건 내가 꼬아서 들었을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한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이런 광경을 보는 것이 힘겨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나 나름의 생각으로는 뉴질랜드는 상당히 다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사는 곳이고, 백인 우월주의로 명성이 높은 이웃나라 호주보다는 덜 하겠지라는 섣부른 추측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현재,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뉴질랜드는 대도시 오클랜드와 웰링턴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다문화 사회라고 하기 어렵다. 인종혐오, 폄하, 차별 그리고 백인우월주의는 직접적인 말과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또는 무의식적으로 묻어나는 말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일들이 오히려 더 많다. 이를 Daily Racism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런 간접적 인종차별이 더 나쁘다고 본다. 백인이 비백인인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나는 의도한 게 아닌데, 나는 좋은 뜻으로 말한 거야 등등 그들의 핑계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수많은 핑계를 늘어놓기 전에 사과를 하고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 보고 자신을 재교육시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몰랐으니까 한 번은 괜찮다. 그렇지만 직접 경험을 했고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도치 않은 말과 행동으로도 상처를 받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 말은 꼭 인종차별과 인종우월주의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며, 또한 백인에게만 한정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도 주위에 다른 인종의 이웃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과 행동들에 대해 내가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입장을 바꾸어 미리 생각해보고 말하는 습관을 들여보는 게 어떨지. 나도 인권을 보장받고 싶은 만큼, 누구나 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



타카푸나 해변





랭거,

10년의 세계 여행에서

느끼고 배운 점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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