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카락이고, 제 얼굴입니다.
주류와 다른 마이너라고 해서 당신이 한 판단을 내뱉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배우려는 의지가 없는 무지는 죄다.
나를 상징하는 동물은 용과 사자다. 둘 다 양기가 가득한 (상상의) 동물인데, 또 그와 반대로 나의 이름은 음기가 가득한 달과 은하수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음과 양을 모두 균형 있게 (라고 믿고 싶다) 갖춘 사람이다. 사람들과의 교류와 연대에서 에너지를 얻기도 쏟아나기도 하고, 동시에 홀로, 특히 자연 속에서 홀로 내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에너지를 채우기도 한다. 얼마 전 8월의 띠별 운세를 알려주는 홍칼리님이 말해주셨다. 용은 열 두 동물 중에서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 소수를 상징한다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외모로 여러 코멘트를 많이 들어왔다. 칭찬으로 해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나는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건가 어린 마음에 혼란과 상처가 될 때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만난 초등시절 전 남자 친구는 나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쳤는지, 자신의 일진 친구들과 합세하여 나의 외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생긴 이목구비, 특히 높고 약간 구부러진 내 콧대를 보고 손으로 거대한 제스처를 취하며 희한한 별명을 만들어 놀리기 바빴다. 과격하게 대응도 해보고, 선생님한테 일러도 보고, 무관심으로 대응해보기도 했다. 수많은 날밤을 눈물로 지새우기도 했다. 충분히 여성스럽지 않다고, 남자 같다고. 한국 사람 맞냐고. 어린 은하도 자신의 내면만큼이나 겉모습의 가치를 충분히 잘 인지하고 있는 아이라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말들을 반복해서 들으면 자기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여름이 되면 내 피부는 자연스럽게 붉은 갈색으로 물든다. 햇빛을 잘 수용하는 예쁜 피부가 사랑스럽고 감사하다. 짧은 생머리를 유지한 지도 2년. 다시 여행 시절 길게 늘어뜨린 곱슬한 머리가 그리웠다. 처음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시작한 스타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참 잘 어울렸다. 그래서 2년 만에 다시 꼬불한 펌 스타일로 돌아갔다. 내가 추구하는 carefree 스타일로 한 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고, 내가 누구인지 상기시키고 내게 분명한 기운을 주는 스타일이었다는 걸 다시 느꼈다. 금의환향하는 나는 꼬불한 머리를 하고 직장에 첫 출근을 했다. 직장 상사는 기대한 만큼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예외가 없는 사람이다 ^^ 뻔히 보이는 스타일로 그래서 대응하기가 오히려 수월하다)
"선생님 그러면 아무도 못건들이겠다. 세 보이는 머리잖아. 어쩌다가 이런 머리를 하려고 생각이 든 거야?"
"예쁜데, 그런 머리 하면 남자 만나긴 좀 힘들겠어. 그 머리하고 있어서 남자 친구 없는 건 아니고? 그러고서 남자 만난 적 있어?"
화룡점정을 보여주는 멘트를 들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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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원래 이런 머리는 흑인들이 많이 하지 않아?"
나는 정말 말 문이 막혀서 그동안 갈고닦았던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쓸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주일 전, 템플스테이로 가는 길에 픽업해주신 기사님은 “한국인이야? 무슨 흑인 같아~ 완전 아메리칸 뉴욕 스타일로다가.” 뒤엣 말들은 앞부분을 수습하려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왜일까. 다른 외모가 왜 놀림을 받아야 하는지, 코멘트를 들어야 하는 건 지, 이해를 받아야 하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데. 내 모습은 외국인 같고, 남자 같은 게 아니고 그냥 나인데. 지금은 이런 소리를 들으면 상대방을 안쓰러워하며 무반응으로 반응하지만, 어린 은하가 마음 꽤나 상했던 걸 생각하면 그게 속이 상한다.
주류에 속하지 않는 건 좀 피곤한 일이 될 수 있다.
안 들어도 되는 불필요한 코멘트들을 들어야 하고, 그러려니 하라고 하지만 들을 때마다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싫다. 이런 경험의 순영향인지 내가 겪어보았기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무례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매사에 조심한다. 애초에 남을 판단하지 않으려고도 하고 그런 수련을 한 지도 좀 되었다. 우는 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실수에서도 배우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말로, 정말로, 몰라서.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중, 한 명이라도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사과를 할 수도 있으니까. 분명히 말하건대, 누구든 소수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사실이고, 사실이라고 해서 다수가 소수를 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존재할 뿐이다.
외국에 나가 여행을 하고 살면서 좋은 점, 편한 점이 그거다. 이런 불필요한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된다. 모두의 모습, 다양성이 "존재한다". 나의 외모에 대해서, 나의 머리에 대해, 옷에 대해 그 누구도 '이런 걸 왜 입었어? 이런 머리를 왜 했어?'라는 뉘앙스로 코멘트하지 않는다는 것.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고, 고유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세계.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하며 마음이 편안했던 것 같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어디든 집이라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본인의 목소리에, 창조성에 집중하세요. 판단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탐험하세요. 그리고 표현하고 실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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