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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우 Aug 02. 2021

지독한 현실주의자를 위한 5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2

2.포토 프롤로그


"정말 갈 수 있을까?"


여름부터 준비했던 12월의 산티아고 순례길. 4~5개월의 여행준비를 하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다. '정말....갈 수 있을까' 그렇게 12월이 되었고, 12월의 어느날 그 길 위에 섰다. 거짓말처럼.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선지 설레는 마음에 10kg 가까이 되는 배낭 무게를 느끼지 못했고, 떠나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많은 여행기를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이 '사색의 길은 아니'었음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출발할 때부터 순간순간을 즐기자고 마음 먹었다. 함께 하는 13명의 동행들에게서 각자 숨겨진 보석같은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혼자 기대가 부풀었었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14시간 비행 후 8시간30분간의 야간열차를 타고 이른 새벽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22km 바로 걷는, 스무살들이나 할 법한 여정을 첫 날에 소화했다.








 이 여행 에세이는 2019년 12월에 순례길을 다녀온 이야기이다. 우리 일행은 '다꿈스쿨'이라는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 다꿈스쿨은 청울림 대표님이 운영하는 자기계발 모임이다. 그 모임에서 1년 동안 '지구여행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모였었다. 1년간 누구가 봐도 대단한 수준의 각자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가 이루어지면 스스로에 대한 보상으로 어디로든 여행을 떠난다는 계획이 있었다.  


 원대한 목표를 이룬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안탑깝게도 후자에 속한다. 목표를 원하는 수준까지는 이루지 못했지만, 지난 1년간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만든 목표와 계획으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보낸 시간은 보상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공 여부와 상관 없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40여명의 인원 중에 가능한 13명이 모여 여행을 떠났다.


 처음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지구여행 프로젝트'였었기 때문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시작했었다. 유럽부터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북미까지 전 대륙을 둘러보며 각자의 시간과 비용,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렇게 3~4개월을 준비하여 산티아고 순례길로 방향을 잡았다.


 다른 많은 선택지가 있었지만, 여행을 주도해서 준비하던 내 입장에서는 여행에서의 목표와 방향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모임은 지난 일년간 매월 한번씩 얼굴을 보며 목표 달성에 대한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서로 동기부여를 주고 받았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은 없었다. 온라인 기반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닉네임으로만 서로를 호칭했다. 정확한 나이는 물론 서로 실명 조차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이런 개인적인 교류가 적은 사람들이 모여 일주일 동안 함께 생활을 해야한다면 이런저런 불협화음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구나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백만원을 들여 떠나야 하는 여행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가정을 해보자. 마지막까지 후보군이었던 태국의 치앙마이로 간다. 모임의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분들이라 그에 걸맞는 여행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치앙마이에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다양할 것이다. 누구는 멋진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스쿠터를 빌려 더 먼 곳으로 떠날 수도 있다. 재능이 있는 분들은 현지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열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이 좋을 수도 있지만 다 같이 떠나는 여행에서는 팀스피릿이 결여될 수 있다.


 그에 반해 산티아고 순례길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출발지가 있고 도착지가 정해져있다. 매일매일의 시간도 제한되어 있다. 모두가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 '앞으로 향해 걷기'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전을 즐기는 분위기여서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시간 제약이 있으므로 일정 중에 변수가 없어야 했다. 그래서 숙소만큼은 출발 전에 모두 예약하고 떠났다. 숙소를 정해 놓고 가게 되면 알베르게(순례자용 숙소)에서 만나는 다른 순례자들과의 교류를 포기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런 교류는 선택할 수 없는 대안이었다.  





 대분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혼자 떠나는 그 여행지를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왔다. 다녀와 보니 혼자 가면 더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걷다보면 혼자가 되기도 하고, 우리 일행이 아닌 사람들과도 만나게 된다. 우리 처럼 짧은 구간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면 어느정도의 인원이 함께가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순례길의 막바지 구간이라 혼자 순례길을 떠나더라도 여러명이 모여서 걷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가 걸었던 구간에는 길 위에서 만난 순례자들이 이미 친구가 되어 우르르 다니는 걸 자주 보게 되었다. 자연스레 무리가 형성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떠나고 싶다면 떠날 수 있는 방법을 만들면 된다. 모든게 갖춰진 때는 절대 오지 않는다. 어디든 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상황에 맞게 조정하고 할 수 있는 길을 찾자. 나한테도 산티아고 순례길은 60세 이후 퇴직 후에나 갈 수 있는 멀고 먼 로망이었다. 짧게라도 다녀오니, 또 다른 꿈을 꾸게 된다. 새로운 버킷 리스트를 일기장에 계속 적게된다.


 우리는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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