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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Feb 04. 2021

기묘한 대화

엄마는 처음이라서

나는 아기를 좋아한다. 오동통한 볼, 천진한 표정, 솔직한 말과 행동.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지내는 하루에 미소보단 울음과 투정이 더 많고, 토실하게 살찌기까지 부모의 보살핌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일찍 결혼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친구는 내가 토요일 오전 침대에서 늘쩡거리는 걸 부러워했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 방에 틀어박히면 맛볼 수 있는 고독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 만끽해 두라고 충고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조카가 있으면 좋겠다고. 예뻐해 주기만 하면 되는, 내가 오롯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아기가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 줄 텐데. 뭐랄까 할머니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는 건 먼 미래의 일만 같았다.


소개팅으로 남편과 처음 만난 날, 충북 음성에 사는 그는 나를 만나러 서울 목동까지 오겠노라고 했다. 한데 약속 시간이 다 되도록 상대는 오지 않았다. 대신 토요일 오후라 차가 막힌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긴 문장에서 그의 미안한 마음이 읽혔다. 나를 만나러 두 시간 넘게 운전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에게 아무 유감도 없었다. 하나 나를 만나러 허둥지둥 들어온 그는 이미 바짝 긴장해 있었다. 소개팅 상대를 사십 분 넘게 기다리게 해 미안한 마음이 큰 데다 처음 본 여자에게 붙임성 있게 말을 잘 거는 능력이 있지도 않았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사실 외모도 행동도 내가 바라는 이상형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를 도와야 할 것 같았다. 어색한 상황에서 건져 주고 싶었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을 말랑말랑하게 녹여 그의 말을 글로 풀어내는 일로 먹고 살았다. 대화가 이어지게 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끌어냈다. 시작은 하는 일과 가족 이야기. 자연스럽게 그의 조카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꾹꾹이라는 태명을 지닌 채 배 속에 들은 아이였다.

그날 이후로도 우리가 정적에 휩싸이면 그 아이가 화제로 떠올랐다. 예정일보다 늦게 나온 이야기, 삼촌이라 들어갈 수 없었던 산후조리원, 처음 사 본 아기 옷. 그 아기의 백일에 내가 초대받아 시부모님께 첫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남편과 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연애 때부터 스스럼없이 나누었다.

“아이는 어떻게 생각해?”

결혼을 약속한 이후일까 아님 그 전일까. 어느 날 구남친이자 현 남편이 내게 물었다.

“주시면 낳아야지. 자기는?”

“나도 그렇지.”

생각을 거치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나온 답변이었다. 그 역시 그랬다. 둘 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 아이가 생긴다면 낳아 기르는 게 당연했다. 그때 그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 아이가 생기는 건 정말 기쁜 일이지만 너무 노력하거나 생기지 않는다고 슬퍼하고 싶지는 않아. 둘만 사는 것도 즐거울 거 같아.”

그의 동생도 아이를 낳기까지 어려움이 있었고 절친한 친구도 오랫동안 자녀를 기다리며 마음고생을 했단다. 나 역시 아이를 가지려고 과배란 주사를 맞거나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는 지인들을 보아 온 터라 그 말에 동감했다.

“나도 그래.”

우린 그렇게 자녀 계획을 세웠다. 조카에게 하는 걸 보면 그는 나보다 더 양육에 소질이 있어 보였다. 친구 아이를 이십 분 정도 돌보다 기진맥진했던 나와는 달리 그는 입으로 까르르 소리를 내거나 우스운 표정을 지어 아기를 웃기거나 번쩍 안아들어 투정을 받아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기를 돌보는 건 잘하는 사람이 하겠지 뭐.’ 하며 약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기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예상도 못할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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