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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oes And Winners Nov 07. 2018

[사운드캣 인터뷰] Lars Jansson

취재: 사운드캣 이준동 국장

Lars Jansson은 스웨덴을 대표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다.     


Jansson은 스웨덴 Örebro에서 자랐으며 어린 시절부터 틀에 박힌 클래식한 음악학교 수업에 지루함을 느꼈고 살아 숨 쉬는 음악을 스스로 찾아다녔다.      


십 대 초반 친척으로부터 Miles Davis, Ben Webster, 그리고 Mose Allison 등의 앨범을 빌려 들으며 재즈의 감각을 스스로 익혔다. 학교 교육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영감을 그 당시 거의 모두 얻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1960년대에 재즈 오르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Kjell Öhman 이 Telstars와 함께한 음악이나 Jimmy Smith, Jack McDuff 등 오르간 연주자들의 음악에 빠져 살았다. 그러던 중 Jansson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드러머 ‘Sjunne Ferger’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은 함께 ‘Takt & Ton’(Beat & Pitch)라는 재즈 듀오를 결성했다.     


1970년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원래 계획대로 치과 대학 진학을 위해 학업에 열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1년 반 만에 치의 대학을 그만두고 음악의 길을 다시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음악의 길을 찾아 나선 그는 ‘Göteborg College of Music’에 다시 입학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Ove Johansson, Jan Forslund, Conny Sjökvist, Gilbert Holmström, Gunnar Lindgren 등 수많은 스웨덴 유명 재즈 아티스트와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웨덴에서 재즈 아티스트로의 입지를 굳히며 그는 세계무대로 나가 Herbie Hancock, McCoy Tyner, Paul Bley, Bill Evans, Lennie Tristano, Keith Jarrett 그리고  Chick Corea 등 세계적인 재즈 아티스트들과 공연을 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스웨덴 출신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현재 그는 스웨덴에서 재즈 밴드로서는 가장 유명한 ‘Lars Jansson Trio'를 이끌며 지금도 스웨덴의 재즈가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세계적인 재즈 아티스트들과 그 어깨를 나란히 하며 스웨덴 재즈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Lars Jansson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과 음악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Lars Jansson

안녕하세요. 한국에 계신 모든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최근 제 아내의 병세가 악화되어 다른 분들의 건강한 삶을 먼저 기원하게 되더군요.     


저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스웨덴을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Lars Jansson이라고 합니다.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인터뷰 요청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인터뷰 제의를 받았을 때 너무 뿌듯했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한국과 스웨덴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기쁘고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67세이지만 아직도 음악을 사랑하고 하루에 몇 시간씩 꾸준히 연습을 하며 음악을 제 주변에 두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연습하다가 떠오르는 멋진 멜로디를 찾았을 때의 희열은 정말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그 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은 아마 다들 그렇듯이 가족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이겠죠. 저는 부모님, 형제들과 함께 했던 여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가족과 함께 여름 별장에 놀러 가 배를 타고 수영도 하고 낚시를 했던 모든 순간들이 행복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별장에서의 여름은 저에게 ‘낙원’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추억들이죠.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 제가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으면 하는 욕망이 크셨습니다. 그때는 어머니가 왜 피아노를 배우게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피아노 수업은 정말 지루했었죠.

다행히 너무나 좋은 선생님께서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셔서 그 사랑 때문에 선생님의 수업에 열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저의 피아노 실력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었습니다.


그렇게 피아노와 음악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던 그때, 우연히 친척으로부터 유명 재즈 가수와 밴드의 음반 몇 개를 빌려왔습니다. 소위 ‘재즈’라 불리는 음악이 뭐가 그리 대단하기에 모두 열광을 하는지 미처 몰랐던 때죠.     


음반을 듣는 순간 제 몸 전체에 커다란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뼈 마디마디가 서로 충돌했고 저의 뇌는 놀이공원에서 어린아이가 놓쳐버린 풍선처럼 붕붕 하늘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배워왔던 클래식 피아노와는 너무나 다른 신세계였고, 그렇게 저는 재즈에 빠져 지금까지 재즈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단순한 영감에서 매료된 재즈였지만 그 시작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정서적인 도움을 위해 피아노를 배우게 했던 것뿐이었고 부모님 모두 제가 치과 의사의 길을 걷기를 바라셨습니다.      


부모님의 간절한 기대를 뒤로 하고 Göteborg에서 1 년 반 동안 재즈 공부를 하며 많은 재즈 음악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저는 과감히 치과 의사의 길을 버리고 재즈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바꿔본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고등학교 때는 친구와 듀오 재즈 밴드도 결성해 활동해 보았고 그 외 여러 밴드와 협업해 공연을 다녔지만, 저의 재즈 경력의 시작은 노르웨이 재즈 베이시스트인 ‘Arild Andersen’과 함께 작업을 하며 정식 프로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 거라 생각합니다.

또한 노르웨이 색소폰 연주자인 ‘Jan Garbarek’과의 만남은 제가 프로 재즈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렇게 정식으로 재즈 뮤지션으로 인정을 받으며 스웨덴의 유명 재즈 아티스트, 그리고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의 공연을 수 없이 함께하며 제가 그토록 바랬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던 시절이었고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자 추억입니다.      


그렇게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하며 저도 저만의 밴드를 결성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만의 밴드를 만들어보겠다는 신념으로 많은 뮤지션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그중에 정말 저와 잘 맞는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를 찾게 되었죠.     


1979년 베이시스트 ‘Anders Jormin’과 드러머 ‘Anders Kjellberg’와 함께 재즈 트리오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베이스스트가 ‘Hars Lars Danielsson’으로 교체된 적이 있었고 그리고 2010년 덴마크 베이시스트 ‘Thomas Fonnesbaek’과 저의 아들인 ‘Paul Svanberg’가 드럼을 연주하며 트리오 밴드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희 밴드는 Hans Ulrik, Sigurdur Flosason, 그리고 Tore Johansen 등 유명 재즈 뮤지션과 협업하며 수차례 음반을 발매하며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세 명이 힘을 합친 트리오 밴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가 솔로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연주를 하면서도 즉흥적으로 펼쳐지는 솔로 연주는 재즈가 가진 참다운 묘미입니다. 갑작스레 베이스가 독주를 하거나, 드러머 단독으로 현란한 드럼 연주를 하는 그 짧은 순간에 우리가 함께 연주하던 음악은 사라지고 그들만의 독무대가 되는 거죠.     


이렇게 자신만의 악기로 자신만의 무대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관객들이 인정해주는 솔로 무대를 완벽히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습을 거듭해야 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솔로 연주자의 음악적인 ‘언어와 문법’을 개발하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이 음악적 언어와 문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1. 이론적인 문법을 익혀라

2. 그 이론을 영감과 접목시켜라

3. 영감을 다른 연주자와 공유하라     


이렇게 세 단계로 정의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음악가, 또는 하늘이 내려주신 재능을 물려받은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이론을 익혀야 합니다. 이 이론이 바로 음악적인 언어와 문법을 익히는 단계입니다.     


음악은 보통 악보로 소통됩니다. 그러면 그 악보에 담긴 활자와 음표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최소한 알아야 합니다. 제가 한국어로 번역된 스웨덴 고전소설책을 읽는다면 그 뜻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이 스웨덴어로 번역된 한국 고전 소설을 읽는다면 당신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고, 수 없이 읽어봤던 책이라 할지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되어있지 않다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은 생소한 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음악을 연주하고 연습하고 항상 음악이 내 옆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음악적인 언어와 문법을 읽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음악 속에 담긴 더 많은 이야기를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영감과 접목시키는 일은 실제 악기 앞에서 수없는 연습을 반복하며 터득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1차적으로 내 머릿속에 저장된 음악적인 언어와 문법을 활용할 때가 된 겁니다. 이 영감은 이론적 학습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감성적 연습만이 답이라 생각합니다.     


직관적이며 추상적인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저는 피아노 앞에 앉아 명상을 자주 합니다. 가끔 익숙한 음악을 연주 해조 기도 하고, 그러다가 잠시 멈추고 머릿속으로 다른 음악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실제 연습과 영적인 연습을 반복하며 내 나름대로의 편곡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들의 음악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지만 제가 솔로로 연주한다 생각하고 마음껏 애드리브를 첨가하는 것이죠. 프레이즈 사이에 갑작스러운 일시 중지를 넣어보기도 하고, 프레이즈의 길이를 제멋대로  바꿔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엉켜버린 음악들이 제자리를 찾기 위한 고민을 하다 보면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겨나고 그 스타일은 본인의 영감으로 재탄생해 새로운 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     

이렇게 창조해낸 나만의 스타일과 영감은 나만의 것일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즈는 혼자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검증을 해봐야 하는 단계가 세 번째 단계입니다.     

기존의 음악에 나만의 영적인 솔로 연주를 더해보는 것이죠. 머릿속에서만 머물지 말고 그 영감을 손끝으로 가지고 와서 직접 연주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느새 그 밴드와 혼연일체가 되어 당신만의 솔로 파트를 구성해내고 있는 놀라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음악에서 벗어나 다른 뮤지션들과 직접 공연을 해보는 겁니다. 이 순간 당신은 당신의 영감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재즈는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멤버의 영감과 나의 영감이 원활히 움직이고 있는지 검증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자, 머리 아픈 일이지만 정리는 해봐야겠죠.


먼저 음악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이론은 익혀라, 두 번째는 그 이론을 기존 음악과 접목시켜 자신만의 스타일과 영감을 창조하는 연습에 매진하라. 마지막으로 그 영감이 남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다른 이들과 함께 검증하라.     


자신을 위해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세상 최고의 뮤지션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3단계로 나뉘어있기는 하지만 결론은 ‘노력’입니다. 공부도 노력이고 연습도 노력이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공연을 한다는 것도 노력일 것입니다. 매 순간 ‘노력’이라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단어가 늘 함께 하죠.      

제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요즘 시대의 대중음악을 즐겨 들어보는 것입니다.(웃음) 나날이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는 최근 음악들은 저에게 끊임없이 노화를 알리는 신호를 보내옵니다.      

그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자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요즘 시대의 주인공은 바로 젊은이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우리는 우리 또래의 음악도 즐겨 들었지만 할아버지 시대의 음악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져 아쉽습니다. 만약 요즘 젊은이가 Herbie Hancock의 음악을 듣는다면 아마 친구들과 멀어질 것입니다(웃음). 만약 누군가가 Miles Davis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도 주변 친구들 몰래 혼자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유행하는 음악을 들으며 대중들 틈에 나를 억지로 집어넣어야 안심이 되는 사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조차 숨기고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분명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무리에 속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묘한 분위기가 음악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고, 더 이상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사랑받을 수 없는 기형적인 음악시장을 형성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비춰보면 저 같은 나이 든 재즈 피아니스트를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그것이 바로 제가 이번 인터뷰를 흔쾌히 받아들인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웨덴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저를 어떻게 찾았는지조차 신기할 만큼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한 자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를 응원해주는 한국의 ‘사운드캣’이라는 회사와 ‘레전드’라는 매체가 있으니 제 건강이 허락되는 한 재즈를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는 저를 향한 채찍질을 할 수 있는 계기라 생각하고 음악을 하기 위해서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달 저희 밴드는 앨범 ‘Just This’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을 준비하면서 느낀 건데 저는 아직도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다양한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제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트리오 밴드와 덴마크 현악 앙상블이 함께 연주하는 그런 큰 무대를 만들어 보고 싶은 소망도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 있는 한국인에 대한 정의는 바로 ‘Sweet and Nice people’입니다. 2019년 한국과 스웨덴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우리 밴드가 초청되어 직접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양국 수교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스웨덴과 한국이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기 바라며, 문화적인 교류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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