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EGEN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oes And Winners Oct 18. 2018

[사운드캣 인터뷰] Jenni Alpert

취재: 이준동 국장 <사진: Jenni Alpert>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이며 Nord U.S.A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Jenni Alpert는 풍부한 성량과 감미로운 멜로디가 담긴 음악으로 청중의 감성을 울리는 매력적인 여가수다.


전 세계 14 개국에서 정기적으로 투어 콘서트를 열고 있으며, Loudon Wainwright III, Jon Allen, Kaki King, Sara Bareilles 그리고 Regina Spektor 등과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과 협연으로 명실상부 세계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가수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가수로 성공한 그녀의 당당한 모습과 달리 그녀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도 처절한 삶 그 자체였다.


그녀는 4살 때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입양되어 여러 보육시설과 위탁가정을 수차례 옮겨 다녔고, 그 과정에서 갖은 수모와 역경을 감당하며 성장해야 했다. 그런 그녀의 삶에 한 가닥 희망이 된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그녀는 가혹한 삶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가수로 성장한다. 자신의 생활에 안정을 찾은 그녀는 이제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를 찾기 위한 또 하나의 여정을 준비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30년 만에 다시 친아버지는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아버지는 미안함 때문인지 그녀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와 그녀를 이어주는 단 하나의 연결고리가 바로 음악이었다. 지금은 노숙자이지만 아버지도 젊은 시절 기타리스트를 꿈꾸며 음악을 하던 뮤지션이었다.


음악에서 찾아낸 연결고리는 두 사람을 다시 가족으로 이어줬고, 그녀로 인해 아버지의 삶에도 점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이제 아버지는 당당히 그녀와 함께 공연도 다니며 행복한 새 삶을 되찾아 가고 있다.


이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많은 이들의 가슴에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사운드캣에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두 부녀의 삶과 음악 이야기를 Jenni Alpert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더 깊이 들어보기로 했다.


[Episode 1] Jenni Alpert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가족이라는 것 자체가 하늘이 내려준 큰 선물이자 축복일 것이다. 태어나자마다 위탁 시설로 보내진 후 4세에 양부모에게 입양된 나에게는 ‘가족’이란 마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 나를 반겨준 것은 나의 부모님이 아닌 ‘경찰관’이었다. 경찰들 손에 안겨 위탁 시설을 거쳐 첫 번째 위탁 가정에 옮겨졌다. 하지만 그들은 어린아이를 입양해 키울 안전한 집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결국 경찰들이 말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졌고 나는 다시 경찰관의 품에 안겨 3 곳의 위탁 가정을 전전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도착한 위탁 가정은 훌륭하고 안정된 유태인 부부의 가정이었다. 그 가정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존재가 기억나는 것은 4 세 무렵부터다. 부모님은 내가 십 대가 될 때까지 가끔씩 나의 입양 사실과 자신들은 양부모라는 사실을 나에게 인지시키려 노력했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낙천적인 아이였고 과거에 얽매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 싫었다. 다만 지금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나와 나의 삶에 충실히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음악


내가 양부모님과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음악’이었다. 그들은 내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음악, 작곡, 노래와 연기 등 많은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음악과 함께 보낸 나의 어린 시절은 항상 긍정적이었고 건강한 삶이었다.


하지만 음악과 함께 누려온 나의 풍족한 삶 속에서 가끔 나를 공허하게 만드는 기억이 되살아나곤 했다. 그것은 바로 ‘정체성의 공허감’이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나를 만든 것은 누구인지, 그리고 나의 이 음악적 유전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받은 건지 등 복잡한 생각들이 나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양부모님과 우리 가족 그 어느 누구도 음악이나 예술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음악적인 재능이 나를 자꾸만 과거로 이끌고 가려는 손짓을 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변화


내가 17살 되던 해, 나의 양아버지가 암 치료로 인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양어머니와 나는 서로 더욱 의지하며 살게 되었고, 이러한 힘든 상황 속에서 내가 친아버지를 찾아 나선다는 것 자체가 양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양어머니는 내가 나의 친아버지를 찾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응원해주며 나를 도와 그의 행방을 함께 찾아 나서기도 했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의 생각은 변함없다. 나의 양어머니가 직접 나를 도와 친아버지를 찾아준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양아버지가 돌아가고 나신 후라 심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는 더욱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나의 친아버지는 나를 낳았을 때 겨우 16살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주변은 항상 마약과 범죄가 우글거렸고, 친아버지는 앞으로 내가 겪을 정신적인 문제와 건강 문제, 그리고 나의 안전한 삶을 위해 입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뿌리


어릴 때부터 음악 수업을 받아왔던 나에게 일반적인 학교 수업은 지루함 그 자체였고, 사실 나에게는 불필요한 교육이었다. 나는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UCLA’의 첫 번째 보컬리스트라는 명예를 안고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에서는 재즈와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20대부터 30대에는 음악과 음반, 그리고 마케팅과 판매 방법 등 음악 산업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


이렇게 음악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음악 산업에 대한 영역까지 도전하며 나의 삶을 일구어 나가면서도 항상 가슴 한 구석에는 친아버지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았다.


2015년 9월, 나는 우연히 온라인 뉴스를 보다가 ‘자신의 뿌리와 가족을 찾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먼저 정신적 치유가 필요하다’라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 기사가 나의 친아버지를 꼭 찾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고, 내가 친아버지의 존재를 찾기 위해 사설탐정에 의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나의 생물학적 가족의 역사와 마약중독, 범죄기록, 그리고 정신 건강상의 문제 등을 염두에 두고 나는 조심스럽게 친아버지에게 다가가려 준비를 시작했다.


사설탐정이 결국 나의 친할머니의 존재를 파악했고, 나는 할머니와 짧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아직 살아 계시나요?”


할머니의 대답은 ‘그래’였다.


나는 순간 나의 호흡이 멎었다는 것을 직감했고 서둘러 전화 수화기를 내려놨다. 정신을 가다듬고 나니 내 입술 사이로 한숨이 길게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안도의 한숨이라 생각하면서도 다시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묘한 반전의 감정이 교차했다.


[Episode 2]에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운드캣 인터뷰] 일본 직장인 밴드, Toconom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