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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비 Jun 01. 2019

21.단상들

후쿠오카에서 돌아온 뒤 비가 많이 내렸다.

이처럼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에 내리는 비를 츠유(梅雨)라고 옆집 할머니가 알려줬다.



떠나는 날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에 새기듯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지난 8월에 교통사고로 자전거가 엿가락처럼 휘어버린 날,  추욱 쳐져 있는 나에게 점장님이 와서 말했다.
"자전거 바꾸니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써" 라며 자전거를 갖다 주셨다.
 참 정 많은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일본을 책으로 접했을 때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덕분에 8월부터 10월까지 남은 2개월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손님들이 하나 둘 우산을 들고 들어온다.
들어올 때까지는 맑았는데 나와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금 속도를 내었다.

5분 정도 달렸을까?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페달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빠진 체인은 프레임에 끼어서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점장님께 다시 돌려줄 건데 깨끗하게 돌려드려야지라는 생각으로 자전거 수리점으로 가서 체인을 끼우고 기름칠도 하고 약간의 조정을 맡겼다. 공임비는 500엔이 나왔다. 이 정도밖에 안 나와?
문득 강변에서 저녁노을이 보고 싶어 졌다. 해가 지기 전 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카페에서 그동안 친해진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데마치야나기(出町柳)로 향했다. 적당한 곳에 앉아서 사 가지고 온 햄버거를 먹는다.
다섯 시만 되어도 해가 지는 이 시차를 적응하기 힘들었던 1년 전, 서른이 다되어가도록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참 미웠는데 지금은 일상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고 감사하지 않은 게 없을 만큼 가득 차있다


해가 산 너머로 떨어지고 달이 차오를 때까지 바라봤다.

주변은 어두워지고 하나 둘 가게의 조명들이 선명해진다.  이제 내일이면 라멘집도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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