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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an 27. 2023

너와 나는 다른 존재

3일 차_깡통시장과 흰여울문화마을 @전주-(신탄진 경유)-부산

경험한다고 모두 아는 건 아니겠지만


말로 백번 설명하기보다, 경험이 낫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을 고생길이 몰아넣는 순간이 있다. 오늘이 딱 그렇다.


오늘 동선은 나름 출장을 많이 다녀/짜본 나도 다소 어렵다. 전주에서 부산으로 움직이는 일정. 반드시 가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선택하지 않을 동선이다. “전주도 가고 부산도 가고 싶어.”라는 아이에게 기차 노선을 펴 놓고 가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가지 못한 이유보다는 못 간 것이 더 기억에 남을 나이이다. 하지만 아이는 언제나 배우고 있으므로 가는 방법의 복잡함을 알려주고, 그래도 선택한다면, 같이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늘 만의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서관에 버스를 타고 다녀오기도 하고(자차로 15분 vs 걷고-버스-갈아타고-걷고 30분), 차로 가면 가까운 야구장도 일부러 지하철로 다녀오기도 한다. 편리함은 누군가의 노력과 그에 상응하는 비용과 맞바꾸는 것임을 배우기도 하고, 두 발로 원하는 곳에 찾아가고 돌아오는 방법을 익혀가는 과정이다. 누군가의 노력이(차로 데려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나 또한 이런 선택으로 인해 돌아오는 고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전주에서 출발하여 신탄진역에 내린 우리는 캐리어 하나와 각자가 멘 가방을 들고 내려서, 다음 기차를 기다릴 동안 점심을 먹고 다시 역으로 돌아와 부산행 기차를 탄다. 오빠와 나를 위해 가락국수를 사서 재빠르게 다시 기차에 올라타던 아빠가 된 기분이다. 오랜만에 탄 새마을 기차가 느리게 느껴진다. 편안함과 빠름에 익숙해져서 상대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이 많아졌음을 느낀다. 기차에 탄 아이는 고단했는지 잠이 들었다.


깡통시장 vs 흰여울문화마을_다름을 존중하기


몇 시간의 기차 여행 끝에 부산이다. "유야, 부산이야~ 일어나자." 하는 눈을 비비며 잠이 깬 아이는 "부산에 오다니 꿈만 같아."라고 말한다. 지난 여름, 가족의 수해 피해로 무산되었던 부산 여행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기다림을 기대로 승화시키며 보채지 않고 잘 기다려준 아이가 대견스럽다.


부산항이 보이는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빨래를 돌려놓고 저녁 먹으러 갈 채비를 한다. 지도를 펼치고 아이와 어디로 움직일지 함께 정한다. 밤바다가 보고 싶은 나는 버스로 금방 닿을 수 있는 곳에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을 골랐다. 왜 가고 싶은지, 뭐가 있는지 한참을 설명한 끝에 아이가 말한다. "내일은 내가 가고 싶은 곳 가니까, 오늘은 엄마 가고 싶은 곳 가자~." 큰 양보를 한듯한 아이의 말투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중앙역 인근에서 버스를 타고, 영도 다리를 건너 흰여울문화마을로 향한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 예쁜 집,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바다다. 밤바다는 언제나 좋다. 공기 끝에 물기가 서려 있고, 너무 눈부시지 않은 빛조각이 흩어진 곳, 혼자서도 보고 싶어서 찾아가던 밤바다다. 하지만 누릴 시간은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뿔싸, 저녁 시간이 지났다. 6시 땡 하면 늘 저녁을 먹는 아이는 배고프다며 어서 가자고 한다. 고불고불, 찾기 어려운 길도 그만 걷고 싶단다.


아, 우리는 이렇게 다르구나.


아이들과 어른들의 시각에서 중요한 건 다르다. 취향의 차이라기보다는 욕구의 차이인 듯하다. 써놓고 보니, 아이와 어른의 차이라기보다는 개인차인 것 같기도 하다. 아이와 다름을 느낄 때마다 '어려서 그렇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된다. 내 딸이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로 우리는 모두 자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도 나도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려 노력해 본다. (이미 나는 3일간 아이와 다름에..숨 고르기를 여러 번 해야겠다. 아이가 나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이 여행이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는 중이다.) 그래도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늘 어렵다. 밤바다를 뒤로하고, 아이가 가고 싶어 한 깡통야시장으로 향한다. 나중에 네가 오고 싶을 때 또 오자 싶다. 마음 한편에는 밤바다가 보고 싶은 나이에도 엄마랑 같이 와줄까 싶은 불안이 스며든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야시장 도착. 가장 먼저 아이가 고른 대왕오징어를 손에 쥐어주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야시장이 들어서기를 기다렸다. 줄줄이 이어오는 야시장 푸드트럭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와 상의 끝에 고른 음식을 줄 서서 샀다. 볶음면 한 그릇을 시장 한 귀퉁이에서 비우고, 몇 가지 음식과 후식으로 먹겠다는 귤을 사들고 숙소로 서둘러 돌아왔다. 내편이랑 둘이갔으면 한참을 더 다녔을 시간인데, 아이의 하루는 빨리 저문다.


부산 영도 흰여울문화마을-깡통시장-부산항 야경


집에 돌아와 상을 펼친다. 맥주 한잔, 육전, 닭발을 펼쳐놓고 그림일기를 썼다. 아이에게 가장 좋았던 건 신탄진역의 꼬마김밥과 라면, 깡통시장에서 먹은 비빔면과 대왕오징어라고 한다. 아이의 그림일기에는 먹거리가 한가득이다. 유의 눈에 밤바다는 까만 바다이고, 야경은 반짝이는 불빛인가 보다.


애씀이 만들어 내는 평화


분명 쉽지 않은 여정인데, "내가 그러자고 했잖아. 힘들지만 괜찮아!", "엄마는 안 힘들어? 가방 무겁지~" 하는 걸 보니 유는 11살의 나보다 더 성숙한 것 같다. 지난 이틀간 큰 다툼 없이 지나온 시간들은 나만이 아니라, 너도,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쓴 결과라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진다.


아이와 나도 언젠가는 한 몸에 있었지만, 낳는 순간 다른 존재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미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엄마보단 할머니랑 있는 시간이 많았잖아~"라는 아이의 말을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나 없이 보낸 시간들이 더 많은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겉모습이 많이 닮았지만,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다.


여행 내내 아이와 내가 다른 것을 눈에 담고 있다. 그 또한 우리의 차이일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것을 보고 다르게 느낄 것이며, 다른 것을 보고 비슷한 것을 떠올릴 것이다. 전자는 너와 나의 차이일 것이고, 후자는 우리가 공유한 시간들이 주는 영향이겠지. 후자가 따듯하기를, 전자는 남이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부산이 좋다더니, 집에서 엄마랑 이야기하고 뒹굴거리고 싶다고, 안 자고 싶다더니, 엄마만 두고 아이는 이미 잠들었다. 부산항의 불빛을 보며, 너와 나의 추억을 기록하고 있는 나는, 오늘도 너랑 함께 여서 좋았다.


_2023.01.11. @전주->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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