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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an 17. 2023

아이를 배제하는 사회에서 공존하기

2일 차_No kids zone을 마주하며 @전주

00은 들어오지 말라는 안내문


여행 2일 차. 아동친화도시로 인증을 받았다던 전주에서도 맞닥뜨리고 말았다. 어느 도시에서든 겪는 일이지만 당혹스러움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는다. No kids zone 이라니.


해온 일의 특성상 청소년 출입금지 표지판이 달려 있는 골목들을 알고 있다. 유해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유해한 일을 그만두면 될 일인데 버젓이 장사를 하며 아이들에게 길을 돌아서 가라는 간판에 늘 분노를 느낀다. 분노하는 마음 가운데에는 부끄러움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기준 나이도 오락가락)은 어른들(누가 어른인가)의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노키즈존이라는 영어 단어는 “여기 올 거면 아이를 두고 오세요.”로 자동번역 된다. “키즈”로 분류되는 아이들을 분위기 있고 맛있는 한 끼나 커피 한잔을 위해 맡길 곳은 어디 있을까? 청년몰 안의 핫 플레이스인 그곳에 아이를 동반한 청년은 갈 수 없다.


아이 키우랴 일하랴 각자 분주하게 살다가 몇 년 만에 지척에 왔다는 소식에 후배가 아이를 데리고 달려오고 있었다. 만남을 앞두고 같이 갈 곳을 찾는 중이었다. 녹색 창 아래 뜬 글씨를 확인한 순간, 메뉴를 먼저 보고 “맛있겠다”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차마 우리가 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할 순 없었다. 너희들이 아이라서, 누군가는 어른들의 조용하고 즐거운 식사를 방해할 가능성을 가진 미성숙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가게에서 제시한 노키즈존인 이유는 “비좁기 때문”이었으니 그리 설명할밖에.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는 사회


얼마 전 제주도에서도 노키즈존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헌법상 평등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 권고에 “개인 간 문제는 헌법과 무관”하다는 상인들의 대응. 그 모든 과정에 듣고 보는 아이들의 ‘입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약자들은 이렇게 공공의 공간에서 소리 없이 배제된다. 문턱 하나에, 짧은 정차 시간에, 찰나의 시선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_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31면



우리도 모두 아이였다. 지금 ‘어른’들이 자랄 때 노키즈 존은 없었다. 골목을, 옆 자리를 내어준 어른들과 함께 나는 자랐다. 아이만을 우선시하는 부모들의 태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하지만 방해받지 않기를 원하는 외식 문화 속에서, 어른과 아이의 소란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다른 어른들과 공존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배제가 알려주는 것은 타인을 (어쩌면 정중하게 보이도록 포장하여) '배제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대학로에도, 예술의전당에서도 반가왔던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공연을 보는 시간 동안 동반한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줄 곳들이 있다. 아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공연을 보/하려면’ 아이를 집에 두고 오거나, 개인적인 자원을 동원해서 맡기고 오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배제는 어른들의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00친화도시 계획에 참여한 적이 있다. 도시 계획 과정에 특정 성별, 장애, 연령 등으로 인한 차별과 배제가 작동하지 않도록 컨설팅도 했었다. 지금도 여러 도시 계획에 00은 고령, 아동, 여성으로 채워져 계속되고 있다. 00친화는 비단 대중교통의 분홍색 의자로 설명할 수 없다. 00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배제해 온 행동에 대한 반성이고, 00과 공존하기 위한 노력이다. 어떠한 장소가 누구를, 어떠한 방식으로 배제하는지 우리는 계속 고민하고 바꿔가야 한다.


청년들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 전제하는 '청년'이 미혼&무자녀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청년 안의 다양성과 지역에서 청년몰 조성을 추진한 취지를 고려한다면, '아동친화도시'라면, 커다란 몰의 어느 한 곳 정도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소란스럽게 자라도 괜찮아.


다행히도 아이들은 브런치 대신 콩나물 국밥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아이용 국밥이 있는 곳에서, 아이들은 적당히 소란스럽게, 호호불며 국밥을 먹는다. 날씨도 따스하여 한복체험하기에도 좋았다. 아이들은 고운 한복을 입고 신이 나서 사진을 찍는다. 나도 "엄마 여기서 찍어주세요."라고 했을 언젠가를 돌아보니 까마득하다. 후배와 만난 지 꼭 20년째 되는 해이다. 지금보다는 20대의 우리와 닮은, 10대가 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낯설고 신기하다. 그저 한복을 입고 걷기만 할 뿐인데 신이 난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아이들은 그런 존재다.


동동 떠가는 내 마음, 그리고 아이들의 한복 체험_@전주


아이들은 즐겁고, 우리도 예전 생각을 하며 전주 거리를 걷는다. 한옥보다는 돈을 내는 체험이 더 많은 거리, 그래서 아이들이 지나치기 어려운 또 다른 의미의 (활 몇 개, 다트 몇 개, 공 몇 번에 커~다란 인형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과, 던지는 순간의 찰나의 재미를 아이들이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어른들에게는) welcome 키즈존인 한옥 거리가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전주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쉽다. 그래도 유는 '한복체험'이, 엄마와 다트를 던져서 받은 인형이 가장 좋다며 웃는다.


아이들은 소란스럽게 자란다. 소란함은 나쁜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고, 사회에서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느라 애쓰고, 늘 분주하다. 그 소란함을, 덕분에 느낄 수 있는 경쾌함을 품어줄 수 있는 곳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_2023.01.10. @ 전주한옥마을


참여해 볼까요_ #차별없는가게 (wewelcomea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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