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Jan 11. 2023

뒷모습에 익숙해지기

1일차_아이와 함께 자라는 중 @전주

찡하고, 평온한 하루


마음먹은 일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이 참 좋다. 나(그리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기대한 일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을 왔다. 딸과 내가 보낸 10년을 기념하는 여행이다. 돌아보니, 이렇게 하루 종일 꼭 붙어 있었던 것은 아기띠에 안고 다닐 때이니, 오랜만이기도 하다.


1일 차_설렘과 걱정이 공존했지만 생각보다 평화롭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만보를 넘게 걸어 고단 했을 텐데, 잠든 아이의 얼굴은 다행히 평온해보인다.  하루 종일 붙어있었는데, 숙소에 와서도 마주 앉아 웃고, 잠들기 전까지 말을 건다. 아빠와 동생이 없어 아쉽다길래  “다음엔 둘이 오지 말까?” 하니. 고개를 젓는다. “유, 엄마 일하는 동안 보고 싶은 거 어떻게 참았어?” “나도 몰라~ 어떻게 참았지?” 아이가 자라는 내내 자리를 비운 날들이 더 많았는데 아이는 그저 “엄마니까 좋다.”라고 해준다. 코 끝이 찡하다.


따듯한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


따뜻한 밥을 먹고 자란 아이, 만드는 정성을 아는 아이, 맛을 음미하며 재료를 종종 맞추는 유에게 먹는 건 언제나 중요한 일이다.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즐거워하는 '유'는 출발 전부터 이른 아침에 떠나면 아침을 못 먹을까 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아빠는 새벽같이 일어나 미역국에 밥을 말아 아이를 배를 따습게 채워주었다.


“엄마, 궁금한 게 있어요. 우리 오늘 뭐 먹어요?” 이른 아침 KTX를 타러 가는 택시 안에서 아이의 가장 큰 궁금증은 어디에 가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먹는지였다. 전주는 초코파이가 맛있다며 전주역에 내리자마자 초코파이 하나를 손에 들고 신이 났다. 마스크를 쓰느라 당장 먹지는 못하고, 부서질까 봐 가방에 넣지도 못하고 손에 들고 종종걸음을 옮긴다. “사회 시간에 배웠는데 전주는 비빔밥과 떡갈비, 대통밥이 맛있대요.” 여행 소식을 알고, 달려와주신 지인분이 사주시는 비빔밥과 떡갈비를 먹으며 조곤조곤 말한다. 이야기 타이밍도 절묘하다. 어른들의 말을 끊지 않고 기다렸다가 할 이야기를 하고는 다시 식사에 집중하는 아이를 순간 놀라서 돌아본다. 밥을 다 먹더니 정원에서 놀며 엄마가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려주는 유. 어느 순간은 아직도 한참 아이 같다가도, 친구 같기도 하다.


여행은 아이와 왔는데, 자꾸만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 내가 비운 수많은 시간들을 나의 어머니가, 늦은 밤까지 무언가 하느라 아침에 힘들어하는 나 대신 내편이 정성으로 키우고 먹였을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재료의 귀함을, 식사 자리에서 예절을 수많은 식사에서 가족들이, 선생님들이 알려주셨을 것이다. 그런 덕에 나의 여행이 순조롭다. 따듯함이 전해지는 방식은 음식의 색만큼이나 다채롭다.


모험과 신뢰


유는 유독 엄마만 찾는 아이였다. 집에 누가 오든 책을 가지고 가서 엉덩이부터 내밀고 어른 무릎에 앉아 책 읽어 달라던 범이와는 달랐다. 엄마가 없으면 잠도 못 자고, 안 보이면 울고, 사람이 많은 곳에 데리고 가면 옷 어딘가를 꼭 붙잡고 있었다. 구겨진 옷이나 꼭 잡은 아이의 손이 빨개진 건, 아이가 그만큼 긴장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유’ 낯선 곳이라 갖는 두려움보다,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재미있는 걸 하지?’라며 자신에게 돌아올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일단 한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뗀다. 더 이상 옷자락을 붙들고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아닌 건 아니고, 싫은 건 싫다고 하고, 적당한 순간엔 "이번엔 엄마가 정하는 대로 하자"며 밀당을 하는데 이길 재간이 없다. 여행의 큰 테두리를 내가 정하면, 세부적인 것들은 상의해서 정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임을 끊임없이 체감한다. 아이가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만큼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것도 온 마음으로 느낀다.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그 시간_정말 한 사람이 이렇게 성숙해지고 있구나 감탄하는 순간들이다. 모험은 사람을 커지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겠지만, 지금의 경험이 그다음의 모험을 더 신나게 즐기게 해 주리라 믿는다.


뒷모습에 익숙해지기


지도를 보며 방향을 이야기하자, 아이는 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아직은 뒷모습이 낯설다. 그런데 정말 주저 없이 걸어간다. 한옥마을 구석구석을 걷고, 먼저 가서 살펴보고,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혼자 메모를 하기도 한다.


전주한옥마을에서_뒷모습이 더 많은 유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를 어른들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잠자리와 씻기 독립이 그랬다. 아이는 이미 잘 자고 있는데, 내가 자꾸 냄새가 그리워 밤 중에 찾아가곤 한다. 아이는 정말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는데, 내가 더 보고 싶었던 날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들곤 했다. 아이와 나는 다른 존재인데, 가끔 동일시하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된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만큼, 할 수 있다고 느낄수록, 거리가 멀어질 것이고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제는 뒷모습을 보는 시간이 더 늘어나겠지 싶다. 유의 뒷모습에 익숙해져야 할 시간이 오는 것 같다.


내가 일하러 간 시간에 아이가 나를 믿고 기다려주었던 것처럼, 나도 보이지 않는 순간의 아이를 더 믿어주어야겠다. 그때를 위해 지금 더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주어야겠다. 여행 첫날인데, 아이는 이미 세상모르게 자는데, 나는 코 끝이 자꾸만 찡하다.


_2023.01.09.@ 전주한옥마을

매거진의 이전글 부자가 되고 싶은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