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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Mar 11. 2023

호미곶, 그리고 온기

6일 차_경주-포항 호미곶-경주

익숙한 것, 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


여행 6일 차, 완전체로 만난 다음날 아침, 아이들 소리에 눈이 떠진다. 익숙한 풍경이다. 넷이서 마주 앉아 귤과 숙소 아주머니께서 주신 약식을 먹는다. 생각해 보니 뭐든지 감사하며 잘 먹는 아이들 덕에 여행 다니며 먹거리로 고생한 적이 없다. 신나서 먹는 아이들이 예쁘다고, 참 잘 먹는다고 음료 하나, 반찬 하나라도 더 내어주시려는 분들이 많았다. 새삼 고맙다.


아이들과 대게 먹으러 포항에 가기로 한 날이다. 도시 간 이동을 해야 해서 작은 차 한 대를 빌렸다. 날이 궂어서 운전이 만만치 않겠다는 걱정을 하는 사이, 이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큰 짐을 들고 호기롭게 기차와 대중교통을 탔지만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었기에, 며칠 만에 조수석에 앉으니 꿀맛이다. 운전을 아무리 좋아해도, 비, 눈, 바람, 안개는 늘 사람을 긴장하게 할 텐데, 십오 년 가까이 운전하는 걸로 생색 한번 내지 않는 사람이다. 또 고맙다.


사실 나는 내내 고맙다. 생각해 보니 감사할 일뿐인 여행이다. 퇴사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이후의 삶의 방향을 찾고 있는 내게, 이 세 사람은 등을 돌린 적이 없다. 내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하지만 서두르지 않게 가만히 곁을 지켜주었다. 감사할 일을 세어보고 또 세어봐도, 참 많다.


웃으니까 웃음이 퍼진다-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조금씩 오는데도 아이들은 즐겁다. 서로의 포즈를 보면서 웃고, 바람 불어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보고 또 웃는다. 뭐가 그리 웃기는지 깔깔, 갓 구운 쥐포 하나 사주니 손에 들고 오물오물 거리며 나란히 걷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무슨 소원이 그리도 많은지, 가는 곳마다 소원을 빈다. 평지가 나오면 달리고, 계단을 보면 가위바위보를 하다가도 어느새 품에 쏙 안겨오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웃음이 난다. 다른 걱정 말고, 지금 이 여행을 즐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웃음을 타고 긍정의 힘도 그렇게 전염되나 보다.


빌어도 빌어도 빌 소원은 많아. @포항 호미곶
살피는 마음이 주는 온기


유가 먹고 싶어 하던 대게를 먹으러 왔다. 한 마리만 해도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 아빠가 푸짐하게 한 상을 대접한다. 아이들은 크기에 한 번, 냄새에 또 한 번, 맛에 다시 한번 놀란다. 대게 다리를 든 고사리 손은 혼자만 먹지 않는다. 큰 살을 열심히 발라내어 엄마, 아빠 입에도 연신 넣어준다. “ 맛있어요. “ ”엄마도 어서 먹어요. “ 말도 해야 하고, 맛있다고 엄지도 올려야 하는 아이들이 분주하다.


앉아있는 방바닥은 따듯하고, 아이들이 살피는 마음에 추위와 먼 길 이동에 지친 몸도 마음도 노곤해지는 기분이다.

문득 어린 시절 “파페포포 메모리즈”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늘 닦아주는 모습은 알고 보면 그건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똑같은 방식으로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사랑은 아이들을 채우고 또다시 흐른다. 언젠가 아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에게 향할 것이다.


돌봄은 받는 사람이나 건네는 사람 모두를 똑같은 온도로 감싸안는 힘이 있다. 아이들과 속마음을 나누고 꼭 끌어안다 보면 매 성장기 중에 누려보지 못했단 순수하고도 따뜻한 손길에 영혼을 맡기는 느낌이 든다. 이제 아이들도 그 돌봄의 온도로 타인을 끌어안는 법을 배워갈 것이다. 이설아.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을 때” 181면_돌봄과 작업_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중



호미곶에 대게 향기가 퍼진다. 그런데 대게향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차가운 바람도 잊힌 것 같다. 오가는 길의 배려가, 기분 좋은 웃음이, 아이들의 손길이 더해져 따듯했던 기억만 난다.


돌아간 후에도 오래 남을 온기는 그렇게 마음에 스며든다. 살면서 다시 가고 싶은, 위안이 되는 장소가 생긴다.


@포항 호미곶, 경주_202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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