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곁에 있는다는 것
함께 쓰는 방
4인가구 방 3개, 일찍부터 나름의 수면독립을 한 아이들에게 방을 하나씩 주고 나니 옷에도 방을 주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것은 어려웠다. 나의 서재를 갖는 것이 언젠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낮에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나 잠들고 난 후, 나는 딸 유의 책상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밥벌이를 한다.
유의 책꽂이 옆에는 내가 보는 책들이 무심히, 빽빽이 놓여있다. 온전히 아이에게 방을 줬다고 이야기하기는 민망한 모양새이다.
유가 오는 시간에 맞춰 책상을 정리하지 못해 사용하던 컵과 여기저기 펼쳐진 자료들이 유를 맞이하는 날이면, 이 사랑스럽고 소란스러운 나의 mate는 “엄마, 정리 좀 하지~”라고 눈을 살짝 흘기며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해주곤 한다. 여느 집과는 다른 풍경이지 않을까 싶다.
곁에 있어준 순간들
유가 자라나는 시간들에는 내가, 내가 자라는 순간에는 유가 곁을 지켜주었다.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공부를 같이했고, 논문을 쓰는 내내 곁에 있어주었다.
나는 폭력이 난무하는 집을 벗어나고 자신의 삶을 지키려고 애쓴 여성들을 만나며 글로 그 경험을 전하고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유는 종종 주변을 맴돌다가 모니터에 떠 있는 글자들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글을 쓰다가 지쳐, 이제는 못쓰겠다고 했을 때도 누구보다 진심으로 조언을 해준 사람 중 한 명이 내 인생의 1/4의 시간을 보낸 유였다. 10살도 안된 이 아이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더니 다시 책을 읽고, 마음을 다잡아 보라고, 엄마는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어른이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다.
유가 범이와 함께 할머니 집에서 돌아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도 나가보지 못하고 모니터에 눈을 고정하고 있을 때가 많다. 아이는 그런 나에게 뭐라고 하기보다는 같이 모니터를 보며, 오늘 엄마의 일을 궁금해한다. 이해가 갈까 싶은 이야기를 해도 아이는 까만 눈으로 집중한다.
나는 너의 이야기를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주고 있는지, 물아봐야 할 것 같다. 아니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만가만,
유의 방에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 이 집에 살던 아이의 취향이 담겼을 천사 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벽지가 붙어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함께 찍은 사진, 아이가 그린 그림과 내가 쓴 메모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잊지 않으려고, 수시로 보려고 쓴 논문 작성법부터, 논문 주제, 그리고 좋아하는 글귀까지. 평소의 아이의 성향을 생각하면 이제 떼라고 할 법도 한데, 아이는 그 공간을 존중하며, 요리조리 피하여 자신의 생활을 이어간다. 충분히 성숙한 mate의 모습을 아이를 통해 배운다.
나의 방식만을 요구하지 않고, 상대의 방식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아이는 내 편을 꼭 닮았다. 정돈하지 못하는 수많은 순간들, 그것이 고스란히 반영된 공간들을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그런 순간에 많은 위안을 얻는다.
늦게까지 일하던 며칠 전, 아이도 책상 한편에 앉아 하루의 공부를 마무리한다. 아이가 벽에 붙은 글귀를 가만히 읽는다.
가끔은 내게 꼭 필요한 것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
묻는 말에 대꾸하지 않아도 되는 고요,
늘어지게 빈둥거릴 수 있는 게으름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숙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의 체취-
엄마의 메모, 아이에게 기억에 남을 글.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아이의 목소리로 들으니 참 좋다. 유는 ‘체취’가 무엇인지 묻더니, 설명을 듣고 내 팔을 가져다 살 내음을 맡더니 살포시 기댄다. 아이와 맞닿은 곳이 따듯해진다.
가만가만,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곁을 지킨다. 곁에 있어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너를 통해 오늘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