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지금 탁구 치는 중입니다_3
탁구라 쓰고 예의라 읽습니다.
공만 넘기면 되는 것이 탁구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잘 치지도 못하면서, 이기고 싶은 마음에 요리조리 공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상대와 주거니 받거니, 랠리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두 번째 수업으로 기억합니다. 오랜만에 탁구채를 잡은 터라 공이 하늘로 치솟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날은 한 어르신이 맞은편 자리를 내어주셨습니다. 한 참을 공을 넘겨주시던 어르신이 갑자기 멈추고 테이블 오른쪽을 가리키며, “여기로 넘겨줘야 해요.”라고 하십니다. 갸우뚱하며 서있자, 덧붙이신 말은 ”그게 예의예요.“였습니다. 그리곤 “다시 해볼까요?”하고 웃으면서 공을 넘겨주십니다.
놀라운 점은 연세가 지긋하신 여성회원분들은 본인도 배우는 입장이라면서 쉬이 누군가를 가르치듯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먼저 본을 보이고, “이렇게 해볼래요?”하시는데, 매일 배우기만 하는 제 입에서는 “선생님”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언니라고 불러달라 하셨지만…)
예의_상대에게 존경을 표하는 말투와 몸가짐
탁구 칠 때 시합을 하자고 말하지 않는 이상, 마주 선다는 것은 함께 운동하는 사람이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약속된 플레이를 연습하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실력을 뽐내려고 무작정 공만 넘겨서는 안 되는 시간이지요.
시합의 규칙을 배우기에 앞서서 서로 존중하는 말투와 몸가짐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매번 배워갑니다. 함께하는 이에게 서로 잘 부탁한다-감사하다는 인사를 주고받는 것, 네트나 모서리에 공이 닿게 되면 사과하는 것, 레슨 받기 전 후 떨어진 공을 주워 담는 것, 상대가 테이블 앞에서 준비가 되기 전에 공을 보내지 않는 것… 사소하지만 이런 태도가 모여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서로 존중받는, 즐거운 기분으로 채워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잘 주고받는 것_가는 공이 고와야 오는 공도 곱다.
테이블 너머로 공을 주고받으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잘 주고받는 것에 대해서요. 말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엄마,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무슨 뜻이에요?
문득 8살 아이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무어라 설명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그때 탁구를 배웠다면 더 잘 설명할 수 있었을까요. 탁구 수업을 듣고 나니 공을 잘 주고받는 것처럼, 말 또한 “잘”주고받으려면 상대의 상황과 의도를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보면 퇴사할 무렵 작고 사소한 말들에 생채기가 났던 것 같습니다. 꼭 알아야 할 정보가 아닌데도 자신의 궁금증을 풀고자 하는 무례한 질문들, 상대의 마음에 가닿을 말의 온도를 생각지 못한 차가운 소리들, 귀 기울여 듣지 않은 채 쌓여가는 오해의 말들. 앞에 선 사람이 즐겁게 임하고자 했던 마음, 의욕을 꺾어 플레이를 그만두게 하는 함부로 넘기는 탁구공 같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그런 공은 랠리로 이어지기는 어렵지요. 탁구는 혼자 치는 것도, 공을 받아치기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반대로 귀 기울여 듣고, 조심스레 건네주는 위로, 내가 해온 일들에 대한 인정의 말들은 ‘다음’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물론 쓴 약도 필요하듯이, 어려운 공도 받아내는 기술이 생긴다면 더 좋겠지만요.
한편으론 아이에게 했던 말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길게 설명/설득하는 말만 한건 아닌지, 아이가 다시 말할 기회를 주었는지요. 일방적인 공 세례가 아니었기를, 가끔 날아오는 공이 별로라도 나는 인내심을 갖고 좋은 공을 보낼 수 있는 엄마였으면 합니다.
공이 오가듯, 예의 바른말들의 랠리가 이어져야 진정한 대화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 존경을 담은 태도.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고 함께 맞춰주려는 노력. 그것은 나이, 젠더 정체성, 피부색을 떠나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부분이겠지요.
탁구는, 그냥 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