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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 Jan 15. 2021

고양이 똥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혹은 물건

글이 안 써져서 고민하고 있는데 고양이가 운다. 계속 운다. ‘울지 마. 나는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호기롭게 글쓰기 모임에서 나를 소개했단 말이야’, ‘첫 글은 다른 글보다 더 잘 쓰고 싶다고’ 정작 울고 싶은 건 난데, 고양이가 운다. 안 써지는 글은 더 안 써진다. 일단 우는 고양이부터 달래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낚싯대 장난감을 잡았다.  ‘그냥 주제를 바꿀까? 도입은 괜찮은 것 같은데…’, ‘아까운데 어떡하지? 망했다’ 장난감을 이리저리 흔들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디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 똥이다.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똥을 쌌다. ‘고양이 똥 이야기나 쓸까?’


고양이 똥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다. 한때는 내 똥보다 관심 있었던 게 고양이 똥이었으니까. 재작년 여름, 남편과 나는 갑자기 고양이 두 마리의 집사가 됐다. 인천에서 태어난 형제 고양이, 어미의 중성화 수술을 위해 어미와 함께 포획된 아기 고양이들이었다. 남편의 성 ‘안'과 나의 성 ‘이'를 따서 ‘안나, 수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키우는 반려동물, 게다가 정말 작고 조심스러운 존재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하나씩 배워나갔다. 출근길에는 고양이 유튜브를 보고 퇴근길에는 고양이 카페 글을 보는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들이 무른 똥을 싸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사료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하며 원인을 찾았다. 사료도 바꿔보고 유산균도 뿌려주고, 과식 때문인가 싶어 사료량도 매일 저울에 재서 정해진 양만 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몇 그램의 사료를 주었는지, 언제 주었는지, 똥의 상태는 어땠는지를 모두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했다. 그날의 똥 사진과 함께. 


당시 내 핸드폰은 사진첩을 열어도 똥, 메모장을 열어도 똥이었다. 퇴근길 남편과의 전화 통화 내용도 똥이었다. “집이야? 똥 봤어? 똥 어때?” 원체 일도 많고 욕심도 많아 정시 퇴근을 딱 지키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 시기만은 달랐다. 빨리 집에 가서 고양이 똥이 보고 싶은 나날이었다. 7시가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비약적일 수도 있지만, 그 무렵 난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 맞벌이로 일하면서 4남매를 키웠던 엄마. 매일 아침, 아빠와 우리 아침밥을 챙겨주고 허겁지겁 출근하던 엄마. 퇴근이 늦어질 때면 꼭 전화해서 저녁 챙겨 먹으라고 전화하고, 일하는 엄마의 늦은 퇴근에 화가 난 아빠 눈치를 살피던 엄마. 우리를 집에 두고 일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가 아플 때는? 엄마는 괜찮았을까?


종종 어떤 글들을 읽다 보면 ‘개똥 같은 글 쓰고 앉아있네’라는 댓글을 마주하기도 하는데, 지금 내가 진짜 고양이 똥을 글로 쓰고 앉아 있다. 이왕 시작했으니 똥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우리집 고양이들은 모두 괜찮아졌다. 똥도 괜찮다. 잘 먹고 잘 싼다. 다행이다. 더이상 핸드폰 사진첩에 고양이 똥은 없고 고양이만 있다. 이 또한 다행이다. 이제 맘놓고 핸드폰을 잃어버려도 괜찮다. 똥에 대한 글을 쓰다 엄마 생각까지 했으니 똥에 대해 쓰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편집자님, 첫 주제로 고양이 똥을 이야기하게 돼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야기하고 싶은 물건에 똥도 포함 가능한가요?



북스톤 긴글쓰기 1기

1주차 과제 - 내가 좋아하는 사람 혹은 물건에 대해 쓰기. 첫 주제로 '바구니'를 정하고 글을 쓰다가 글이 너무 안 써지던 찰나, 고양이가 똥을 싸서 썼다. 후딱 쓴 글이 어째 더 좋다. 


https://yourwriting.club/24/?id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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