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룰 Feb 19. 2021

어린이라는 세계 밖의 나

서평 '어린이라는 세계'

쓰기클럽 4주차 과제는 서평이었다. 그동안 일에 관해서만 너무 많이 쓴 탓에 다른 주제가 쓰고 싶었다. 내게 일은 중요하지만, 일이 전부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진 않은 마음이랄까. 일이 아닌 주제, 더 맘에 드는 글감을 고민하며 글쓰기를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나 마감일까지 미룰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일 이야기를 써서 제출했다. 일을 잘하기 위해 읽었던 책의 서평이었다. 사실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쓰고 싶었으나 책에 대한 감정과 내 생각을 연결해 글로 풀어낼 수 없었다. 매니저님께 과제를 제출하며 보내는 메일에 쓰고 싶은 주제는 따로 있었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해 일에 대한 서평을 보낸다는 말을 덧붙였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글로 나를 알게 된 사람에게 내가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과제를 제출한 화요일 저녁, 예상치 못했던 9살 조카 소율이의 방문이 있었다. 이모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말 뒤에 우리 집에 오면 할 수 있는 9살의 투두 리스트가 보였다. 내 폰에만 있는 고양이 게임, 저녁 식사 대신 시켜주는 치킨, 31가지 맛 중 원하는 맛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아이스크림 등이었다. 속이 빤히 보였지만, 이모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말이 너무 달콤해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내 핸드폰도 소율이에게 넘겨주었다. 


저녁 내내 나의 9살 조카는 엄마 없는 자유를 맘껏 누렸다. 왼손으로는 치킨을 들고 먹으며 오른손으로는 핸드폰 게임을 했다.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알기에 나와 남편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 지나치다 싶어 소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흐음,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데…?”

“이모, 좋아하는 것도 너무 많이 하면 안 되는 거야?”


그 대화를 마치고 나는 ‘어린이라는 세계’의 서평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몇 시간 전까진 내가 왜 어린이에 대한 글을 쓰지 못했는 지에 관한 이유도 깨달았다. 단순했다. 어린이라는 세상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였다. 생각을 하지 않으니 글로도 쓸 수 없었다. 글은 고인 생각을 엮어내는 거니까. 그럼 나는 왜 어린이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조카들을 제외하고는 내 주변에 어린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깨달았다. 내가 이 책이 좋았던 이유를. 


아이를 낳지 않은 어른에겐 ‘어린이’를 사람으로, 혹은 가족의 일원으로 만날 일이 별로 없다. 만날 일이 없으니 생각해볼 기회도 없다. 그렇게 알아볼 노력도 배울 기회도 없었다. 그런 나와 달리 저자는 책 제목대로 ‘어린이라는 세계’에 놓인 사람이었다. 졸업 후 출판사에서 어린이 책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했고 지금은 독서 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어린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자기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고 한다. 사소하고 싱겁더라도 나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쓰고 싶었단다. 그러나 어린이를 빼놓고는 나를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치 몇 주 동안 어떤 주제를 받아도 일로 소화해 내 일이 드러나는 글을 작성했던 나처럼.


그는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의 세계는 넓어진다며 어린이 이야기를 맘껏 해주었다. 어린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한다는 지도서나 안내서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어린이들과 있었던 여러 경험을 떠올려 보게 됐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내가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새롭게 알게 되는 느낌. 그냥 지나쳤던 것을 한 번 더 살펴보게 되는 순간들을 꺼내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서평을 시작해보겠다는 마음도 먹을 수 있었다.


맘껏 게임을 하고 싶어서 이모 집에서 하룻밤까지 자고, 다음 날 아침 집으로 돌아가게 된 조카는, 자신을 데리러 온 할머니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소율이, 이모 집에서 뭐 했어?”

“행복했어"


어린이를 생각하며, 나의 세계는 또 한 번 넓어진다.



북스톤 긴글쓰기 1기

6주 차 과제 - 마지막 과제, 자유주제. 이번에는 4주차 때 쓰고 싶었던 책의 서평을 다시 썼다. 매니저님은 마지막 주차 글이 자유주제라 더 잘 쓴 것같다 이야기했는데, 사실 나는 주차가 지날 수록 점점 더 쓰는게 어려웠다. 그래도 어렵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하니... 믿어본다!!!


https://yourwriting.club/24/?idx=4


작가의 이전글 돈의 크기가 마음의 크기는 아니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