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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 Jul 14. 2021

바쁜데 심심해

그냥 고양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보내는 뉴스레터 <냐불냐불> 에세이

이메일 뉴스레터 서비스, 스티비로 발송하는 뉴스레터 '냐불냐불'에서 발행한 에세이 2화입니다. 뉴스레터로 보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



우울하면 잠이 늘어난다. 그때도 잤다. 취준생이었을 때랑, 잘 다니던 회사에서 번아웃이 왔을 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과 매일 최고 기온을 갱신하던 폭염의 여름을 잠으로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기억은 조금 조각나 있다.


나이 듦의 장점은 여러 상태의 나를 경험해보았다는 점이 아닐까. 이제 나는 우울하면 잠이 늘어난다는 것도 알지만, 잠을 잔다고 우울함이 없어지는 게 아님도 안다. 억지로라도 해야 할 일, 쉽게 할 수 있고 하고 나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주로 달리기나 청소였다. 덕분에 몸은 조금 가벼워졌고, 옷방도 덕분에 깨끗해졌다. 그렇다고 마음도 함께 가벼워지거나, 깨끗해지지는 않았지만.


‘바쁜데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잘 지내냐고 묻는 질문에, 웃으며 잘 지낸다고 말하고, 바쁜데 좀 심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울한 건가 싶기도 한데, 우울하다는 단어 하나로 내 마음을 정의하기에는 조금 부족해서 아직은 감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그게 뭐냐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갸우뚱하며 웃는 친구들한테는 안나의 그루밍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바쁜데 심심해 보이지? 이런 느낌이야!" 


물론 귀여운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10% 정도는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 마음이 어지러울 때 글을 쓴다. 쓰다 보면 보이지 않던 생각이 보이고 잡히지 않던 마음이 잡힌다. 거의 한 달 동안, 바쁜데 심심하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냐불냐불을 쓰다 보니 오늘에서야 그 감정이 어떤 건지, 안나의 그루밍 영상이 아닌, 글로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1. 바쁨: 해야 할 일이 많음, 마감이 있음

2. 심심함: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아님


그러니까 마감은 닥쳐오는데, 지금은 하기 싫은 그런 마음?(쓰고 보니 시험기간이잖아?) 1주일에 한 번, 아무 때나 보내겠다는 냐불냐불을 매주 일요일 자정이 다 되어서야 보내는 그런 마음과 비슷할까?


...다 내가 자처한 일이다. 올해 초에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모든 일들을 잡았고, 결국 매주 해야 할 일이 많은, 바쁨 상태로 지내고 있다. 아이고, 누굴 탓해. 


이런 마음을 알고 나니 그루밍하는 안나가 마냥 귀여워 보이진 않아, 옆에 있는 안나를 빤히 쳐다보게 된다.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혹시 할 수 없어 그루밍만 하고 있는 걸까 싶다.


무엇이 하고 싶을까? 우리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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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시간은 빠르니까, 늘 나보다 먼저 떠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요. 그래서 좋았던 기억을 글로 묶어두고 싶어요. 아, 글을 쓰는 가장 큰 원동력은 마감이잖아요! 조만간 이 주제로 개인 뉴스레터라도 발행해볼까 해요. - 냐불냐불 발행인 https://brunch.co.kr/@yirul/33"

그냥 고양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뉴스레터를 보냅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에세이를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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