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저녁 8시, 책상에서 일어나는 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구글 홈 미니가 말한다. “룰, 이제 책상에 앉을 시간이야. 현재 시간은 오후 7시 50분입니다.” … 내가 설정했지만, 고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나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늘어져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고 차를 끓인다. 거실을 내가 좋아하는 조도로 맞춘다. 그리고 책상에 앉는다.
내가 발견한 나의 생산성을 높이는 트리거는 ‘책상'. 처음 몇 분만 견디면 책상에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다. 오래 지속하고 싶어서 해시태그도 만들었다. #일요일저녁8시책상. 이름을 정하고 나니 묘한 책임감이 생겨 오늘도 책상에 앉았다. 덕분에 미뤄둔 이 글을 쓴다.
별거 없다. 일단 앉는 게 목표라 앉으면 목표 달성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책상에 앉으면 뭔가 하게 된다. 목표가 없는 데, 다른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마치 헬스장 앞에 놓인, ‘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헬스장에 오는 것입니다. 당신은 방금 그걸 해내셨습니다.’라는 현수막처럼…
책상에 앉아서 1주일 동안 썼던 감정일기(Mooda)를 살펴보다 밀린 일기가 있으면 쓱 추가하고, 잠깐 유튜브도 봤다가 인스타그램도 했다가 다시 가계부 정리도 좀 한다. 다른 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꼭 해야 하는 건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해왔던 주간 회고. ‘메모어'라는 회고 모임에 속해있어 안 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어쩌다 시작해서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메모어'라는 이 회고 모임도 그렇다. 작년 초, 스타트업 스터디에서 알게 된 친구가 한 시즌에 20만 원 보증금을 내는 회고 모임을 하려고 한다는 말에 ‘잉?’하다가 그날이 마감일이라는 말에 얼떨결에 시작했다.
운영진이 랜덤으로 5~6명 정도 조를 만들고 슬랙 채널을 만들어주면 채널에 매주 회고를 남긴다.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의 글에 댓글과 이모지도 남긴다. 회고를 남기지 않거나, 댓글을 남기지 않으면 20만 원에서 2~3만 원의 보증금이 차감된다. 억지로 한다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매번 시즌마다 서로의 일주일이 궁금한, 너무 좋은 멤버들을 만난 덕분에 1년 넘게 ‘주간 회고'를 하고 있다.
내가 주로 하는 회고는 키워드 회고. 예전 회사에서 개인 비전을 수립할 때, Career, Academic, Life로 미션을 정하고 비전을 수립했던 경험이 익숙해서 개인 회고도 그 3가지 분류를 바탕으로 키워드를 정해서 하고 있다. Career만으로 부족한 부분도 있어서 중간에 Work를 추가하기는 했지만, 일과 삶을 적절히 살펴볼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매번 시즌이 끝나면 운영진이 그동안의 회고들을 정리해서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와 함께 정리된 노션 페이지를 보내준다. 매주 다른 삶인데, 신기하게 자주 언급하고 있는 단어들이 보인다. 아마,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이겠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영역별로 지난주 내 회고와 비교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Career 영역에서 지난주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함께 보고 싶은… 매달 시즌이 끝나면 각 키워드 별로 모아서 블로그에 기록하기도 했지만, 그건 마감이 없으니 안 하게 됐다. 내가 쓴 글을 찾아서 복사하고 붙여 넣는 것도 귀찮고…
…아, 그런데 이거 노션으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올해 첫 일요일 저녁 8시 책상에서 ‘주간 회고' 노션 템플릿을 만들었다. 데이터베이스를 하나 만들고 날짜, 제목, 속성들을 추가했다. 원래 ‘Aa 이름'으로 지울 수 없는 속성에 ‘회고 내용’을 적으려고 했는데, 해당 속성은 ‘노션 꾸미기(a.k.a 노꾸)’를 할 수 없어 따로 ‘텍스트’ 속성을 하나 추가했다. 중요한 내용은 볼드도 되고, 밑줄도 칠 수 있어 아주 좋다.
나의 ‘주간 회고' 템플릿을 참고해서 만들고 싶은 분들을 위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선 노션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활용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기능으로 노션을 쓰는 이유다. 속성은 <날짜>, <제목>, <C/W/A/L>, <키워드>, <내용>, <점수> 6가지로 구성했다.
날짜: 회고하는 날(주로 일요일)을 기록한다.
제목: 해당 회고가 ‘메모어’ 모임에서 몇 주차 기록인지 적는다.
C/W/A/L: 선택 속성으로 Work, Career, Academic, Life 4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키워드: 해당 회고의 주요 키워드를 적는다.
내용: 회고 내용을 적는다.
점수: 1주일 동안 영역(C/W/A/L) 별로 점수를 정한다.
이렇게 만들다 보니 회사에서 많이 쓰는 회고 방식인 KPT를 추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워드 회고를 쓰다 보면 이번 주에 배운 점이나 다짐 등을 따로 기록해두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것도 따로 좀 적어두면 좋지 않을까?
데이터베이스에 KPT(Keep, Problem, Try) 속성도 추가했다. 다만, 한 달 정도 사용해보니 막상 쓸 말이 생각 안 날 때가 더 많아서… 이 속성은 써보다가 나중에는 없앨 수도 있을 것 같다. 안 쓰는 건 필요 없어!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KPT 회고를 위해 따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지는 않았다. 원래 관리하던 데이터베이스에 KPT 속성을 하나 더 추가했다. 어차피 노션 데이터베이스에서는 하나의 표에서 관리해도 여러 종류로 ‘보기’를 설정해둘 수 있다. 그게 노션 데이터베이스가 에버노트, 엑셀, 구글 스프레드보다 좋은 점이기도 하다. (노션 앰베서더이긴 하지만, 그냥 메모할 때는 메모장이나 에버노트를, 수식 계산 등에는 엑셀, 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사용한다. 지금 해결할 문제에 맞춰 툴을 선택하는 게 옳다.)
‘메모어' 회고 모임에 따로 공유하지는 않지만 속성으로 ‘콘텐츠'를 그리고 KPT 속성에 ‘Fact' 옵션을 추가했다. ‘Fact’에는 1주일 동안 내게 있었던 일 중 떠오르는 것들을 ‘사실’만 쓴다. 주간 회고를 할 때, 내가 이번 주에 했던 일이 뭔지 기억하기 위해 캘린더나 다이어리를 보면서 하고는 하는데, 왔다 갔다 하는 게 번거로워 처음 책상에 앉으면 ‘Fact’부터 쓰고 시작한다. 아마 KPT 속성에서 다른 옵션들(Keep, Problem, Try)은 없어져도 ‘Fact’는 계속 유지할 것 같다.
‘Fact’ 뿐만 아니라, 1주일을 정리하다 보니 ‘콘텐츠’도 정리하고 싶어 추가했다. 사실 1월에 한참 ‘그해 우리는'을 재밌게 봐서 어딘가 적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콘텐츠라는 속성도 하나 추가했다. 1주일 동안 내가 읽은 책, 본 드라마/영화 그리고 배운 강의, 클래스 등을 기록하는 용도이다. 이건 ‘보기’에 갤러리 뷰로 추가해서 이미지도 넣어 관리한다.
노션에서 최근에 생긴 ‘하위 그룹화’ 기능을 사용하면 설정해놓은 옵션인 <게임>, <드라마/영화>, <책>, <클래스>로 다시 그룹화되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 작년에 노션이 만든 기능 중 최고의 기능이 아닐 수 없다.
기록을 정리하는데, 사람마다 나에게 맞는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번에 정리하면서 알았다. 최대한 한 곳에서 모두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조차 까먹는다.
실제로 영화나 독서 기록 등을 기록할 수 있는 템플릿을 여러 번 만들었지만, 템플릿을 만드는 데는 성공하였고 기록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이런 툴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도 정리해보고 싶고, 저것도 정리해보고 싶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정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리고 꼭 나의 모든 걸 정리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 한 곳에 기록해도 필터, 보기 등을 이용해서 다양하게 분류해서 보여줄 수 있는 노션을 좋아하게 됐다.
작성할 때는 표로 작성하지만, 보기는 다양하게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던 이유는 바로, 아래처럼 칸반 보드로 나의 1년의 기록을 보고 싶어서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2022년 연말은 1년 동안 차곡차곡 모은 회고 카드가 빼곡하게 채워진 종이를 크게 인쇄해서 한 해를 다시 회고하는 거다. <점수>를 적은 이유도 카드 위에 나의 점수 그래프를 그리면 재밌겠다 싶어서 적어두었다.
‘메모어' 모임의 20만 원 보증금도 큰 자극이 되어주지만, 20대의 20만 원과 30대의 20만 원은 느낌이 다르다. 그러니까 그동안의 나의 행동을 생각해보았을 때, 나는 ‘돈'이 ‘귀찮음'을 이겨 주지 못했다. 벌금이 있다고 해도 ‘귀찮아?’ 그렇다면 그냥 안 하는 거지. 대신 ‘내가 좋아하는 타인과의 약속'이 있거나, 결과물이 ‘눈에 보이면’ 성공하는 경험이 많았다. 작년 회고 역시 ‘보증금'을 깎이고 싶지 않은 마음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꾸준히 하게 되었고, 올해는 1년 뒤에 모아진 이 카드를 보고 싶다는 마음에, 일요일 저녁 8시면 하기 싫은 마음을 꾹 누르고 책상에 앉아 노션을 연다.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나의 노션을 보더니 2가지 평을 해주었는데, 첫 번째는 ‘너는 죽을 때, 다 지우고 죽어야겠다.’(ㅋㅋㅋ), 그리고 또 하나는 ‘이거 사람들한테 그냥 화면만 공유해줘도 좋아할걸?’이었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랬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 8시 책상에, (종종) 인스타 라이브를 곁들이기로 했다. 내가 아는 걸 공유해주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특히 ‘주간 회고' 템플릿은 내가 정말 잘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는 힘들 때 ‘일기', ‘회고'의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 툴이 재밌어서라도 사람들이 시도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물론 유튜브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해야지'라는 생각만 하고 안 하게 될 걸 알았다. 일단 쉽게 해 볼 수 있는 ‘인스타 라이브'라도 올해 종종 시도해보려고 한다. 실제로 쓰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할 수 있다, 혹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오늘은 이 글을 쓰다가 회고 제출을 늦을 뻔했다. 아이고. 아무튼 이렇게 적었다는 건 내가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좋아하는 타인과의 약속’이 하나 더 추가된 것. 스스로 꾸준히 기록해서 내년에는 큰 종이에 뽑힌 모습으로 회고하는 글을 작성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한국 노션 앰베서더로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노션 이야기를 작성합니다. 노션 사용법을 고민하는 여러분에게 조금의 팁을 줄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아요. 종종 노션이나 엑셀 등 생산성 툴을 사용법을 안내하는 인스타 라이브나,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니, 참고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