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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영 Jun 23. 2021

靑 : 환상을 쓴다는 것





서글픈 푸르른 빛이 한 점 들이친 거실에


나는 조용히 누워 관찰한다.



습한 공기가 베란다를 타고 올라와 창을 짓이겼다.


우울함이 함께 딸려왔다.



사방이 꽉 막힌 수족관 같다고, 네가 중얼거렸다.


나는 대답 대신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너는 그 우울함에 완패하여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파아란 우울이 여름의 공기와 바람에 실려오면


너는 언제나 축 처져 바닥의 냉기를 맛본다.



건조한 눈동자는 텅 비어 있고


오후의 지긋지긋한 고요함도 마찬가지로 공허하다.




너는 하나, 둘, 셋 중얼거리며 바닥을 긁었고


나는 그런 너를 보며 딱한 마음을 속으로 셌다.






by. 일영








환상을 쓴다는 것은 내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안을 준다. 나는 하루가 끝나갈 때 잠시 멈춰 서서 지나간  시간을 되짚는다.


오늘의 순간순간을, 환상을 본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 해진 그 순간들을 떠올린다.


곧 각인된 풍경과 일상을 꺼내 암호로

남겨본다.



짤막한 소설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기나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쓰는 것은 정체성 없는 글. 분명한 글들 사이를 미아처럼 떠도는 글이 되어 버린다.



내 글엔 이름도 없다. 너른 우주를 부유하는

 정체모를 별처럼 쓸모도 존재감도 없다.



하지만 그것에 안정감을 느낀다.

온점을 찍은 직후, 약간의 불안감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나만의 방식으로 먼지 같은 현실을 털어낸다.





*




외로움, 얄팍하고 눅눅한 감정을 쓰고 싶었다.



바닥에 납작 누워 멍하니 파란빛을 등으로 받는

나와 그것을 지켜보는 서술자. 둘의 모습이 떠올랐다.



외로운 주인을 지키는 고양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생각했다. 눈빛과 몸짓뿐인

대화가 갑갑하진 않을지

함께 나란히 눕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진

않을지.



골방에 틀어박힌 외로움이 오늘 내 하루와 닮았다고 느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들은 조금씩

 좋든 나쁘든, 자신의 일부를 닮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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