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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온 Apr 13. 2020

14/52
혀끝에 닿았고,

그림과 함께 52주 프로젝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맛은? 이란 질문에 열이면 여덟 정도는 ‘매운맛’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나도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길거리에 널리고 깔린게 마라탕 집이며, 엽떡 먹고 싶다는 말이 일종의 밈처럼 쓰이는 요즘, 맵찔이들은 어디로 가나 싶다. 물론 나는 맵찔이는 아니지만,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매운 음식을 피하는 상황이니 밖에서 사먹는 음식이 영 달갑지만은 않은 요즘이다. 


맛이란게 참, 기호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 (적어도 현재 내 기준에선) 현대인에게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되었다는게 참 신기하다. 인간들은 역시 어디서든 쾌락과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특이한 생명체인 것 같다. 




말이란것도 어찌보면 뱉어내는 사람의 혀끝에 가장 먼저 닿는데, 말의 맛을 느끼고 있을까? 본인이 뱉어내는 것을이 쓴지, 매운지, 짠지 알 수 있을텐데. 사람은 대단찮은 것으로 상처 받지 않는다. 우리가 맛있는 것을 먹고 소소하게 행복을 누리는 것 처럼 그냥 별 생각 없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하늘 끝까지 행복했다가도 심해 저 바닥으로 치닫는다. 이미 맛 봤던 음식의 맛을 혀가 기억하는데, 뇌는 이미 들은 말을 기억하지 못할까? 매운 말 한마디에 저 심장까지 저릿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돌이켜보는데 기억나는 것은 없고 속만 쓰리다. 반대로 달달한 말 한번 들으면 세상이 다 내것 같고 그렇다. 


말을 예쁘게 하는게 중요한가? 필요한 말만 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살면서 꼭 필요한 탄단지만 드시길. 사람이 화가나면 청양고추 팍팍 썰어서 끓인 봉지 라면 하나 먹을 수도 있는거고, 우울에 빠져 허우적댈때 미친듯이 단 케이크 한조각이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을. 말도 똑같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는걸. 먹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처럼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단 음식을 굉장히 못 먹는 편인데, 케이크 한 조각을 혼자 먹을 수 없고 과자 한 봉지는 한 입 먹고 그냥 버려버린다. 어릴때부터 먹지 않았더니 맛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상냥한 말을 들었을때도 잘 모른다. 다정하게 말하는 것에도 면역력이 없다. 


나한테 하는 말이라고? 에이 설마.

아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래!


쑥스럽고 믿지 못할 만큼 달달한 것들. 한 입 먹고 너무 달아서 인상을 찌푸리며 뱉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안절부절하는 것들. 먹어 보지 못했던 것들이라 삼키지도 못하고 입 안에서만 맴돈다. 먹어보지 못해서 똑같이 흉내내지도 못하는 말들. 요즘 예쁘게 말하려고 노력 중인데, 예쁜 말들도 많이 들어봐야 나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어렵고도 힘든 길이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상냥하게 말을 해주자. 너를 만나 빛날 수 있었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사랑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어서 늘 감사하다. 내 혀끝에 닿았던 말들이 네게도 닿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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