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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온 Jan 25. 2020

4/52
젖어드는 밤

그림과 함께 52주 프로젝트


잠드는 게 쉽지 않아 새로 생긴 습관이 있다. 빗소리 ASMR을 아주 약하게 재생시켜 놓고 이불 안에서 뒤척거린다. 습관이 되면 나중에는 이 소리 없이 잠을 못 든다고 하던데 지금 당장의 나는 어떻게든 잠은 자야겠으니 약에 중독되는 것 마냥 야금야금 비와 함께 잠을 청한다. 온몸으로 빗소리를 맞으며 잠을 청하는 것은 심해에 나를 던져 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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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아주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최근에는 그런 사실을 부정당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났다. 예를 들어 잠에 빠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던지, 한번 깨버리면 다시 잠들기 쉽지 않다던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주기적으로 일어나게 된다던지 하는 일들 말이다. 특히나 새벽에 깨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깨어나는 기분 조차 역겹다.  누군가 나의 잠든 정신을 우악스레 움켜쥐고 억지로 수면 위로 끌어당기는 느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멱살 잡혀 내동댕이 쳐지는 그 더러운 기분으로 새벽에 깨고 나면 다시 잠드는 것이 그렇게 고역이었다.

잠은 만병통치약이라 불릴 정도로 사람이 사는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비슷한 일과 중에서도 잠만큼은 꼭 규칙적으로 자려고 노력 중이다. 하루에 못해도 7시간은 기본으로 자야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스스로 약속한 시간 미만으로 자고 일어나면 왠지 그 날 하루는 종일 피곤하고 되는 일이 없는 것만 같다. 특히나 새벽에 자꾸 눈을 떴던 날들은 그날의 시작이 특히나 기분 좋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면 잠으로 현실 도피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도를 넘어서면 오히려 그 스트레스에 허우적대면서 깬다는 사실은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자다가도 현실과 비슷한 꿈을 꾸고, 내가 실재한 세상을 살아가는지 꿈을 꾸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최근을 살고 나니 비참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나는 어찌하여 오롯이 내 시간인 수면마저도 괴로워하며 방해받고 있는 것일까? 잠을 못 자겠어, 말 한마디면 많은 다정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조금 내려놓으라고 충고해주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것쯤은 다들 알 테지. 수면睡眠이 수면水面처럼 다가와서 나를 집어삼켜주었으면 좋겠다. 다만 하루라도 빗소리 없이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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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래도 꽤 잘 수 있다. 빗소리가 다가오던 불면을 쫓아내 주었기 때문일까. 자도 자도 끝이 없던 내 칠흑 같은 짐들을 조금이나마 상쇄시켜 주었을 수도 있다. 한없이 젖어드는 밤, 바짝 마른땅 위에 누워 한 평도 안 되는 내 몸 위에만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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