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52주 프로젝트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한 진단을 명확하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게 몇 명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가 아님은 틀림없다. 요즘의 나는 호불호도 명확하지 않고, 사람에 대한 판단력도 좀 흐려졌다. 마치 맹물 탄 것 같은 21세기의 칙칙하고 춥지 않은 겨울 같달까. 누구를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확고했던 나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뭐든지 괜찮다고 말하며 두리뭉실하게 흘러간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일까, 전과는 달리 마음먹었던 일도 미적대고 지레 겁부터 먹는다. 대체 왜 이렇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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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회사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데, 그것 마저도 자신감이 다 사라져 버려서 미적거리는 중이다. 겁이 너무 많아졌다.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했고,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소심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내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아는데 어째서 도전하는 일에 두려워하는 걸까. 어린 나이에 집 떠나와 살던 그때의 열정과 무모함은 어디로 간 걸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길로 가겠다는 어린 시절의 치기는 이미 허공에 흩어진 지 오래다.
생각해보면 그러네. 내 장래를 걱정한 어머니와 심각하게도 싸웠었다. 안정된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부모님의 작은 소망을 매섭게 뿌리치고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했었다. 얌전하고 말 잘 듣는 딸을 원하셨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많이 속 썩이셨을 거다. 열정적이며 고집 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였으니까. 가끔은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곤 하는데, 참 열심히도 살았네, 싶다. 열심히 그림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그냥 그랬었다. 그때는 남들 다 그렇게 하니까 라고 자기 합리화도 했던 것 같은데 결국 다 나의 피와 살이 되는 밑거름이었다. 지금의 나는 어쩌지? 의욕도 없고 제대로 하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데, 100세 시대라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거 아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없고, 뭔갈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괜히 뒤처지는 기분에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했다.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나? 새로운 제2외국어를 배울까? 다른 취미는? 디자인 공부는? 요즘 이게 핫하다던데, 저건 어떻지?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과거의 나처럼 좋아하는 책을 수업 시간 몰래몰래 읽어가며 도서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그 작은 열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책장 가득 찬 도서관의 책을 통째로 읽을 정도의 열정, 자투리 시간에 끄적이며 연습장 한가득 낙서로 가득 채우던 그 열정이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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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목표는 남과 비교하지 않기. 나와 같은 선에서 출발했을지라도 누구는 나보다 빠르게 앞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느린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체력도 좋지 못하고, 지구력도 부족하다. 조금 느리지만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오로지 나의 길만 보면서 가다 보면 열정도 내게 돌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