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내가 서로 맞아들어가는 과정
취미생활을 소재로 에세이 작업을 하는 와중에 출판사 편집자분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출간될 제 책에 대한 설명글이 적혀 있었는데요. 글의 소재가 된 제 취미를 두고 편집자분이 ‘반려취미’라고 써두셨더라고요. 반려동물도 아니고, 반려식물도 아닌 반려취미? 무형의 것을 두고 ‘반려’라는 단어를 써도 될까. 그에 대한 신기함과 색다름을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취미를 갖고 있냐고요?
온몸에 보호장비를 둘러쓰고 죽도를 휘두르는 무도, 검도입니다. 체육 전공자도 아니고요. 딱히 칼과 친한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것 같진 않은데 어쩌다 검도를 하게 된건지... 당시 읽었던 만화 ‘바람의 검심’ 탓일지, 아니면 고등학생 때 동아리 선배가 들고 다니던 죽도가 인상깊게 남아서인지. 여튼 얼떨결에 스무살 남짓에 시작했던 검도를 서른 여섯이 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일과시간의 업무를 끝나고 별일이 없으면 저녁즈음 도장으로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 달도 몇 년도 아닌 십 수년의 시간. 그 시간을 거치다 보니 꾸준히 승단하면서 5단을 앞둔 4단이 돼있었어요. 자수, 그림, 피아노. 세상에 취미가 그렇게 다양한데. 회사는 여러 번 옮겨도 취미생활은 바꾸지 않고 한 분야를 꾸준히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주변 없는 사람임에도 취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수련일지를 조금씩 끄적 거렸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그걸 소재로 글과 그림을 써내려가기 시작했고요. 혼자만 알아보게 써내리던 일기가 그렇게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그림과 에세이가 되어갔어요. 계속되던 수련의 시간에 이런 식의 작업경험도 하나둘 쌓여가더니 예상 밖의 이벤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에세이 작업 출간제안을 받아서 계약을 하게 되었고요. 마리끌레르라는 여성 잡지에 인터뷰와 사진이 실렸어요(처음에는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고 스팸메일인줄 알았어요). 나만의 취미생활이었던 것을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보이는 과정은 재미있으면서도 부침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돈 한푼 안 되는 무도 취미를 오랜 시간 시간과 몸을 들여가며 해온 스스로가 신기해 자문자답 해보기도 했습니다. SNS 계정에 자랑할 만큼 멋져 보여서? 아니면 이 분야를 잘 하는 사람이라서? 그러기엔 체육과 연관된 이미지라고는 전혀 없는, 검도를 제외한 나머지의 제 생활(글쓰는 일을 한다거나, 책 읽는 걸 좋아한다거나 하는)과도 크게 연결되지 않는 듯했어요. 검도하는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그럴듯한 뭔가가 나오진 않았어요.
그렇다면 이 무도를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아서 영향을 받았나? 더더욱 아닙니다. 사람들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보았던 다른 무도를 떠올려보면 대부분 주짓수나 유도 같은 것들이에요. 검도는 그 안에서도 작고 작은 인지도를 가진 분야라고 느낍니다. 일상에서는 검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그 안에서 저와 같은 성별인 여성이 검도를 한다는 건 더욱 드물어요. 이래서는 왜 오래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해봤자 점점 더 오리무중이 되네요.
하지만 이만큼 오래 한 취미라면, 앞서 편집자님이 쓴 말마따라 ‘반려’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검도를 수련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었어요. 검도를 하면서 해내게 된 기술들, 함께 수련하는 도반들, 시합이나 승단 등 성장의 이정표 같은 관문을 넘나들며 갖게 된 성취의 기억들. 수련의 경험이 저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함에 있어 조금 더 적은 망설임을 갖고 뛰어들게 만들지 않았는지. 그 시도를 통해 또 새로운 일상을 가꿀 수 있게 도와준 건 아닌지. 그 정도의 감으로 스스로의 수련생활을 돌아보고 있답니다.
겁이 많고 잘 주눅드는 저에게 검도가 그리 잘 맞는 옷은 아닐 지 모릅니다. 그래도 함께 해온 시간만큼 검도에 맞아들어가는 제가, 혹은 때로 검도 자체가 나에게 맞춤옷처럼 맞아들어간 시간이 된 건 아닐까요. 게다가 제가 좋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어떤 아름다움은 무도 안에서도 있더라고요. 잘 가다듬은 자세와 정확한 타격. 그걸 해내는 몸의 동작들. 그런 것들이 수련하는 사람의 마음에, 혹은 그 수련의 성과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뭔가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감하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일까 싶습니다만. 아무튼 수련하는 사람들끼리는 알게 모르게 공유하게 되는 우리만의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떠올려보니 무예를 반려취미로 두는 거, 나름 괜찮은 일 같아요. 어느덧 저녁시간이 다 되었네요. 저는 또 수련하러 가보겠습니다.
*이 글은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 뉴스레터에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