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 Jul 16. 2023

수련의 하루를 이어가보겠습니다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 기고3


“눈물 뚝!”


충청북도 음성의 대한검도회 중앙연수원. 5단 승단심사를 보러 온 이곳에서 눈물보가 터졌습니다. 심사의 1차시험인 실기심사에서 똑 떨어졌거든요.


서울에서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게 생각나서 였을까요. 아니면 낙방만 세 번째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6개월 이상 몸 여기저기 다쳐가며 준비한 힘듦이 몰려와서 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심사 떨어졌다고 검도 그만 할 거 아니니까." 펑펑 우는 저를 보고 같이 있던 도장 사범님이 그만 울라며 다독였습니다. 함께 심사를 보러 와 1차시험에서 미끄러진 다른 관원들과 섭섭한 마음을 다독이며 서울로 올라왔어요.


“검도를 직업 삼은 사람도 아니잖아. 생활 체육인인데 4단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5단심사를 보러 올 때 실업선수들과 같이 시험 보면 무서워.”

“심사기준에 어떻게 맞출지 감을 못 잡겠어.”


세 번의 승단심사 도전 실패, 거기에 심사응시 한 두번 만에 합격하는 선배들을 보며 ‘합격은 내 몫이 아닌가' 싶었어요. ‘생계의 영역이 아니니까 실패한다 해도 크게 연연하지 말자'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맞는 말일지도요. 검도 말고 일상에 중요한 건 꽤 많으니까요. 하지만 생계처럼 쓸모의 영역은 아닐지라도 오랫동안 좋아해 온 취미를 좀더 잘 하고 싶은 거. 자연스레 떠오른 그 마음을 모른 척 하기는 좀 그렇더라고요. 나는 잘 못하니까, 라며 도망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도 제 마음을 스스로 억누르는 것 같아 불편해지고 말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치 소리를 들어온 터라, 꽤 오랫동안 무예 수련에서 잘 하는 제 모습을 그려보지 않았어요. 재능 없는 분야에 재미를 붙이고 꾸준히 수련해 온 자신을 간혹 신기해하며 수련생활을 해 나갔거든요. “꼭 잘 하지 않아도 돼. 좋아하는 것만으로 괜찮아.” 시합에서 곧잘 지곤 했던 스스로에게 해준 말이었죠. 물론 그만큼만 해도 괜찮아요, 괜찮지만.. 실은 ‘욕심내는 나’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부족한 나'를 제대로 보기 싫어서, 상처받기 싫어서 성장할 수 있는 ‘나의 크기’를 정해온 거예요.


그래도 수련생활을 계속하며 깨달은 게 있습니다. 남들보다 화려하진 않아도, 더뎌도 분명히 성장해가는 내 모습이 있다는 걸요. 시합에서도 조금씩 이기는 경험이 생기고, 무엇보다 4단까지 승단을 했다는 건 노력해서 성과를 거뒀다는 말도 되잖아요. 좋아하면 잘 하고 싶어지는 마음. 그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한발한발 내딛었을 때 빠르고 느린 여부와 상관없이 언젠가 목표점에 도달해 있는 거죠. 함께 수련생활을 하는 다른 관원들도 성장하는 건 마찬가지였고요.


사실 노력한다고 잘 하게 될 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원하는 마음이 선명해지는 기쁨도 있고, 그 마음을 이어갔을 때 의외의 결과가 기다릴지 모르니까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주인공 희도가 펜싱선수로서의 꿈을 향해 조금씩 길을 내는 모습처럼 말이죠. 포기하면 결국 스스로가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모르는 채로 끝날 거 같아요.


거듭된 탈락으로 지금의 제 모습이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그래도 더 잘하고 싶으니까, 언젠가는 되겠지, 같은 대책 없는 마음도 먹어보면서 쉴 땐 쉬고 바짝 수련할 때는 몰두하며 도장에서 땀 흘리고 지냅니다. ‘합격'만이 노력의 대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도전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생긴 목표의식, 심사를 준비하면서 겪는 관원들과의 일상, 잘 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솔직해지는 과정. 그냥 ‘수련하는 일상' 자체가 보상일 거예요.


여느 날과 별 차이 없는 저녁의 도장. 한편에서 “제가 6단심사에 거듭 심사에 떨어져봐서 아는데요"라며 다른 저단자 관원을 지도하는 5단 사범님의 말이 들립니다. 그 말에 피식 웃었습니다. 심사를 거듭 떨어져서 그 마음을 알 것 같았고, 조금씩 6단스러워지는 사범님을 지켜보는 것도 신기했으니까요.  


수련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작은 즐거움. 그걸 하나둘 알아채 가며 노력을 이어가보겠습니다. 


※ 이 글은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 뉴스레터에 실렸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