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에 우리는 불온할 수밖에

by 일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평일 오전 11시는 고비를 넘는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부글부글 끓던 뱃속이 끝내 배탈이 되던 시간이었고, 통증에 가까운 허기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시간이었고, 아침잠이 완전히 깨 이런 불쾌감들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2교시가 끝난 학교 안은 등교시간의 졸음이 완전히 깬 아이들의 난잡한 혈기로 터질 것만 같았다. 몇몇은 벽에 기대 말뚝박기를 하고, 몇몇은 소리를 지르며 매점으로 달려가고, 다른 몇몇은 록음악이 가요보다 우월한 이유를 쉼 없이 떠들어댔다. 때로는 전교가 들썩거리는 싸움이 벌어지거나, 어디선가 여자 아이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조용한 나는 그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고비였다.


학교 안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하지만 같은 시간 담장 밖은 생선장수 아저씨의 메가폰이 메아리 칠만큼 조용했다. 학교는 신도시 아파트촌 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을 챙기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허겁지겁 학교에 보낸 뒤 홀로 남은 주부들이 남은 집안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주부들이 집을 나서지 않는 평일 오전의 동네엔 그저 새들만이 요란했다.


시끄러운 학교와 고요한 바깥세상은 담장을 경계로 서로 다른 세계가 됐다.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담장 너머의 세계에 마음대로 다가갈 수 없었다. 교칙은 엄격했다. 위반은 곧 체벌을 뜻했다. 중요한 경조사를 이유로 부모님이 담임선생님과 직접 통화하거나, 구급차에 실려 나갈 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외출증을 얻어낼 방법은 거의 없었다.



담장 하나에 갈린 속박과 자유


방학 때 반강제로 나와야 했던 보충수업 때도 예외 따위는 없었다. 한 번 들어가면 허락한 시간까지 절대 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시절의 학교를 때때로 교도소와 군대에 빗대곤 했다. 학생회의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외출증 발급을 좀 더 관대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교무실에 가서 따질 법도 했지만, 그랬다가는 ‘야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주임에게 구레나룻을 통째로 잡아 뜯길 게 뻔했다.


그런 이유로 내게 평일 오전 11시는 속박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바깥 세계를 그저 담장 너머로 쳐다보는 건 시끄러운 학교를 견디는 일만큼이나 괴로운 일이었다. 괴롭다고 바라보지 않을 수 없어 그 시간은 더욱 간절했고, 누릴 수 없는 시간을 향한 애착으로 나는 매일 오전마다 끙끙 앓았다.


3교시 체육시간은 평일 오전 11시의 바깥세상을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체육시간 때마다 틈틈이 담장 너머의 풍경을 내다봤다. 가끔 축구를 하다 담장 밖으로 넘어간 공을 가지러 간다는 핑계를 대며 교문 밖을 살짝 나갔다 오기도 했다. 속박된 상황에서 찔끔찔끔 맛보는 자유의 느낌은 짜릿했다. 그 느낌은 지극히 불온한 것이었다. 자유는 언제나 코앞에 있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로 자유와 속박이 갈렸다. 그 시간의 풍경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일탈을 유도했다.


일산의 오전 11시 풍경.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은 햇살이다.


자유의 맛을 안 나는 결국 탈출을 감행했다. 2교시가 끝난 후 쉬는 시간에 책가방을 챙겨 담을 넘었다. 담 안쪽의 친구들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모두가 바쁜 시간이었다. 나는 가장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들을 가로질러 곧장 시내로 걸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지갑에는 6천 원이 남아 있었다. 종로 3가 역에 내려 탑골공원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들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여의나루 역에 내렸다. 배가 고파 고수부지 매점에서 컵라면과 빵을 사 먹었다. 저녁을 먹을 돈은 없었다.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원효대교 밑 벤치에서 새파란 한강의 풍경을 보다 잠시 울었다. 담장 안의 부자유는 그 바깥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갈구했던 시간과 버린 시간들... 삶은 반복되는 것일까.


대학에 오면서 속박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구레나룻을 잡아 뜯는 ‘야인’ 같은 인간은 캠퍼스에 없었다. 담장은 언제든 나갈 수 있는 것이 됐다. 평일 오전 11시는 흔한 것이 됐다. 그러나 기억에 남은 건 많지 않다. 동기들과 이른 점심을 먹거나, 캠퍼스 광장에서 수다를 떨거나, 오전 수업을 듣거나, 점심도 거른 채 늦잠을 자고 침대에서 뒤척인 것이 그때 내가 누린 평일 오전 11시의 전부였다.


나는 그 시간을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는 것처럼 흘려보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 시간들은 다시 속박의 시간이 됐다. 이제는 그 시간을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삶은 반복되는 것일까. 막상 짧은 자유가 주어졌을 때는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 몰라하다 그냥 손에 쥔 모래처럼 흘려보내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많았음에도 우리에겐 찰나의 자유를 누릴 순간들이 뜻하지 않게 찾아오곤 한다. 은행 일을 보기 위해 반차를 쓰게 됐다거나, 뜻하지 않게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 밖으로 나가게 됐다거나 하는 일들이 한두 번쯤은 생기기 마련이니까.


만약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게 누구든 온 마음을 다해 햇살이 하얗게 내려오는 평일 오전 11시를 만끽하리라. 살아갈 시간은 결국 정해져 있고, 모든 생을 통틀어 온전한 자유를 누릴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그래서 우린 주어진 찰나 속에서 가능한 많은 것들을 느껴야만 하니까. 그러니 오전 11시의 태양을 보면서 우리는 끝내 불온해질 수밖에. 오늘도, 내일도.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