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여행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by 일로

내가 중학생 때부터 군에서 전역할 때까지 부모님은 피자집을 하셨다. 그 얘기는 부모님에게 수시로 불려나가 가게 일을 도와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버는 건 언제나 비슷하니 인건비를 줄여야 남는 게 생기니까. 학창시절 피자집에서 부모님의 일을 도우면서 느꼈던 건 사람들의 취향이라는 게 의외로 단순하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손님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먹던 것만 찾는 손님, 언제나 새로운 메뉴를 찾는 손님. 굳이 따지면 먹던 것만 찾는 손님들이 조금 더 많은데, 몇몇 손님들의 확고한 보수성은 굳건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개업하고서 업종을 바꾸는 9년 동안 한결같이 불고기 피자만 주문하던 손님도 있었으니까. 9년에 걸친 그분의 주문 기록엔 ‘불고기, 불고기, 불고기‘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짧은 인생, 이왕 뭘 먹을 거면 안 먹어본 것들을 먹자고 생각한 건 그때부터다. 세월이 흘러 저승으로 가기 전에 내가 찾아간 식당의 영수증들을 볼 기회가 주어졌는데 죄다 한 가지메뉴만 찍혀있다면 뭔가 억울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식에 관한 한 도전적이다. 성인이 되고나서는 자연스레 외국식당에도 발을 들였다. 집에서 멀지 않은 파주엔 베어링을 깎고 주물을 다루는 소규모 공장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위한 동남아시아 식당들도 하나 둘 들어섰다. 아시아의 식재료들이 원체 싸고 그곳에서 밥을 먹는 노동자들도 싼 음식을 원하니 이태원처럼 식당에서 돈 걱정 할 필요는 없었다.



어떤 음식이든 먹는 목적이 있다


공단 근처 태국식당에서 처음 먹은 랍무. 처음 먹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음식들이 입에 맞았던 건 아니다. 공단 주변의 외국 식당들이란 결국 이주노동자들이 고국의 맥주와 음식을 먹으면서, 그들의 언어로 수다를 떨면서 향수를 달래는 곳이니까. 그건 국내의 입맛과 정서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다. 한국사람 입맛에 맞게 만드는 배려 따위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찾아간 동남아 식당의 음식들은 때때로 너무 시고, 너무 달고, 너무 매웠다. 처음 먹어보는 고수풀에선 시금털털한 주방세제 냄새가 났다. ‘랍무’에 들어간 태국 된장과 피시소스에선 날카로운 짠맛이 났다. 여러 가지 자극이 동시에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음식이든 먹는 목적이란 게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비오는 날 짬뽕이나 부침개를 찾는 것처럼 아무리 생소한 맛의 음식이라도 두어 번 먹다보면 그들이 이 음식을 왜 즐기는지 조금씩 알 수 있다. 희한하게 그걸 알고 먹을 때와 모르고 먹을 때의 맛은 지구와 안드로메다의 거리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 가게 문을 열고 이 폭력적인 맛의 음식들을 다시 주문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이런 과정들은 한 번도 해외에 나가지 못한 내게 세상의 시야를 넓혀주는 느낌을 준다. 새로운 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경험한다. 당황스럽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아가며 시야를 넓힌다. 어느새 그것의 매력에 빠져든다. 단지 여권이 없을 뿐 이것들이 여행이 아닐 이유가 없다. 적어도 내게 여행은 거리가 아닌 감각의 문제다.


금촌 재래시장 안에는 생긴지 2년 남짓 된 베트남식당이 있다. 이전에 갔던 태국 식당이 작년 여름 문을 닫은 차에 아쉬워하다 새로 알게 된 곳이다. 주말 저녁에 가 보니 베트남 부부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 둘을 데리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철제 틀로 된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니 자줏빛의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학교 앞에 하나쯤 있는 허름한 분식집을 떠올렸다.



금촌시장, 쌀국수, 성공적


돼지 등뼈가 들어간 후띠우 쌀국수, 젓가락질, 성공적


개방된 주방엔 다큐멘터리에서 본 하노이의 쌀국수 가게처럼 막 건져낸 커다란 수육 덩어리가 도마 위에서 허연 김을 뿜고 있었다. 밥과 면 중에서 고민하다 6000원 짜리 ‘후띠우 쌀국수’를 주문했다. 무늬 한 점 없는 하얀 플라스틱 그릇에는 맑은 돼지육수, 굵은 돼지 등뼈 두 마디, 지방 없는 수육 세 점, 그리고 숙주와 묵직한 쌀 면 한 덩이, 레몬 한 조각이 들어있었다.


국물을 떠 살짝 맛을 봤다. 처음 먹는 맛이다. 흔히 먹는 프렌차이즈 쌀국수와는 달랐다. 해선장이나 조미료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차라리 소금으로 간한 맑은 장국에 가까웠다. 고수풀을 한 손 가득 쥐어 국수에 넣은 뒤 그릇을 입에 대고 마시듯 먹었다. 면과 국물을 정신없이 빨아들이는 내내 반대편 테이블에선 베트남 아줌마 둘이 맥주 두 병에 쌀국수 두 그릇을 시켜놓고 왁자하게 회포를 풀고 있었다.


부부는 때때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며 호방하게 웃었다. 프라이팬에 올려놓은 옥수수 알 마냥 톡톡 튀는 느낌의 베트남어가 싫지 않았다. 부부와 아줌마들이 주고받는 몸짓과 표정에선 단골손님의 친숙함과 타지를 살아가는 동포들끼리의 끈적한 연대감이 뒤섞여 있었다. 베트남어보다 한국어를 더 많이 쓰는 딸 둘은 먼저 번 손님이 나간 빈 테이블을 당연하다는 듯 행주로 훔쳤다.


시장에서 자란 나는 그 아이들에게 괜히 말을 걸고 싶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비싼 돈을 주고 먹어야 했던 그 많은 현지의 맛들은 뭘 의미하는 걸까 생각했다. 베트남어로 쓴 가게 간판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부부는 ‘내 고향’이라 대답했다.


블랙커피에 연유를 넣은 베트남식 커피라떼를 마시면서 여름밤 이곳의 풍경을 상상했다. 미지근하게 돌아가는 선풍기 밑에서 쌀국수와 맥주를 시켜놓고 향수를 달래는 베트남 사람들이 가득찬 가게의 모습이 떠올랐다. 날이 뜨거워지면 지금보다 더 선연한 모습의 베트남이 이 가게에 서려 있을 것이다.


내가 이 가게에서 느끼는 모든 이국적인 것들이 베트남 노동자들에겐 고향을 향한 그리움의 정수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얻어갈 수 있는 건 단지 시고, 짜고, 맵고, 강렬한 향의 요리들과 잔뜩 부른 배만이 아니리라. 이걸 어떻게 여행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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