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축구 최강은 일본이다', '한국과 일본의 축구 격차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속칭 '일본 우위론'은 축구 커뮤니티 회원들 사이에서 단골 논쟁거리였다. 사실 축구 커뮤니티 내부에만 국한된 이슈는 아니다. 축구 전문기자부터 선수 출신 저명인사들까지 이미 일본 축구의 전반적인 역량이 한국 축구를 압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 국가대표 축구 선수 이영표는 몇 년 전 한 방송에서 "한국 축구가 일본보다 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나라들은 일본이 더 강하다는 걸 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발언을 놓고 한때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일본 축구의 역량에 관한 논쟁이 한바탕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손웅정 손 축구 아카데미 감독의 "냉정하게 말해 아시안컵 우승하면 안 된다"는 인터뷰 발언 역시 '일본 우위론'의 맥락에서 논쟁의 소재가 되고 있다.
툭하면 나오는 일본 우위론, 사실일까?
일련의 발언들을 듣다 보면 한국 축구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만 같다. 정말 수많은 축구인들과 축구 팬들의 우려대로 한국 축구가 일본에게 압도되고 있는 걸까?
흔히 말하는 '일본 우위론'의 핵심 근거는 인프라의 격차다. 그중에서도 유소년 선수에 대한 투자와 저변 확대는 단골 지적 사항이다. 일본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81만 7,375 명(2022년 기준)이다. 반면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17만 645 명(2023년 기준)이다. 네 배 이상의 차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일본축구협회의 통계는 선수와 동호인을 구분 짓지 않는다. 반면 대한축구협회는 이 둘을 분리해 집계한다. 이에 따른 관리 체계도 다르다.
일본의 축구 저변, 미처 보지 못한 사실들
2021년 기준 전(全)일본 고등축구연맹에 등록된 팀은 3962개, 18세 이하 선수의 수는 16만 7,685명이다. 그중에서도 약 5%의 인원들이 직업 선수를 지망한다고 추산하면(2020년 대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중학교 선수가 K리그1에 진출하는 비율은 약 5.8%다) 일본은 8,384명이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18세 이하 선수의 수는 6,091명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양국 인구비율에 걸맞은 차이다.
그렇다면 일본축구협회가 프로를 지향하는 선수 및 팀을 취미반과 분리해 집계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는 부활동(部活動)이라는 일본 특유의 학원 문화 때문이다. 일본 학생들은 입학 후 사실상 의무적으로 동아리 활동에 참가해야 한다. 이렇게 결성된 스포츠 팀들이 현과 도 내에서 경쟁을 하고, 전국 토너먼트로 진출하는 구조다. 야구에는 고시엔(甲子園), 축구에는 일본 고교 축구 선수권 대회가 있다. 두 대회의 결승전은 국가적 이벤트다.
사실 여기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프로선수를 육성하는 팀과 취미반이 한데 섞여서 경쟁해야 한다. 엘리트 축구를 지향하는 팀이 취미반과 경쟁하면 경기능력을 키우기 어렵다. '인터하이(전국 고등학교 종합체육대회)'라는 엘리트 체육 대회가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쉽지 않다. 일본축구협회가 엘리트 유소년 상비군을 꾸려 집중 관리하는 이유다.
점점 치밀해지고 커지는 한국의 풀뿌리 축구
한국은 아예 이 둘을 분리해 경쟁을 붙인다. I리그가 그렇다. 이 대회는 대한축구협회에 선수로 등록된 유소년들은 출전할 수 없다. 이렇게 둘을 분리하면, 취미반은 저변 확대 중심으로, 엘리트 유소년들은 연령별 간 경쟁을 중심으로 관리가 가능해진다. 2009년에 축구협회 등록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가 성공적으로 정착된 것도 그 때문이다.
기존 토너먼트 위주의 경쟁은 승리만을 위한 보수적인 경기 운영, 과도한 훈련으로 인한 선수 혹사와 학습권 박탈을 야기했다. 학부모와 지도자 등 이해 주체 간의 합의와 조율이 쉽지 않았지만, 기존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업이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리그 출범 당시 1만 5000여 명이었던 연령별 선수 숫자가 현재 2만 8000여 명까지 늘어났다.
1학년부터 3학년을 한데 묶어 출전시킬 때 생기는 폐해(입시를 앞둔 고3 위주로 팀을 꾸리는)를 없애기 위해 K리그 유스 팀들을 중심으로 저학년 축구 리그도 운영 중이다. 여기에 연령별 대표팀으로 소집할 수 없는 만 11세부터 15세 유망주들을 지역 거점별로 관리 교육하는 '골든에이지' 프로그램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작년 U-20월드컵에서 4위를 기록한 대표팀 전원이 이 '골든에이지' 프로그램 출신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국내 유소년 선수 관리 체계는 점점 치밀해지고 있다. 여기엔 당연히 돈이 든다. 대한축구협회가 지난 20년 간 예산의 절반 이상을 유소년 선수 육성에 투자한 결과다.
오히려 고민이 많은 건 일본이다. 일본의 부활동 문화는 단시간에 축구 인구를 확보하는 일등공신이었으나, 이는 체계적인 엘리트 유소년 선수 관리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저변 확대도 말처럼 쉽지 않다. '백년대계'를 외치며 축구인 200만 시대를 열겠다 외쳤으나 10년째 80만 명 선에서 멈춰 있다. 그마저도 2014년 95만 명 선을 정점으로 계속 주저앉고 있다.
특히 축구의 주요 소비층인 성인 남성의 비율은 협회 등록 선수 기준 약 14%에 불과하다. 학창시절 부활동이 성년의 취미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동호인 선수의 약 67%가 성인 남성인 걸 감안하면 이는 처참한 수준이다.
언제까지 '나무는 안 보고 숲만 논할 것'인가
그 사이에도 한국은 권역별 디비전 시스템을 안착시키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특히 K7리그의 성장세가 놀랍다. 2017년 852개였던 등록 팀 수가 2022년 1288개 팀으로 늘어났다. 이대로면 K5리그부터 K7리그 간의 승강제도 순조롭게 진행될 예정이다.
반면 일본은 현 단위 리그를 디비전 시스템으로 편입시키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권역별 팀 수가 넉넉해야 하는데, 참여의 주축이 되어야 할 성인 남성의 저변 확대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J2리그의 팀 수가 20개인데, 그보다 하위리그인 JFL리그의 팀 수가 16개 밖에 안 되는 것도 그래서다.
현재 일본 축구는 상위리그에 자본을 대거 투자하는 식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현재 일본축구협회의 정책은 풀뿌리 축구 육성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의 하위리그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조기축구라는 한국적 토대가 결정적이었다. 한국 남자 대다수가 '군대 축구'에 대한 경험이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조기축구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절대 얕잡아 볼 게 아니다. 여기에 여성 동호인들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한국은 스스로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공차기'를 즐기는 나라다. 범위를 아시아로 한정하면 독보적인 수준이다.
현재 '일본 우위론'을 위시한 논쟁을 보면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본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그간 한국축구를 둘러싼 담론과 당위가 '나무는 안 보고 숲만 보는' 식으로 진행되어왔기 때문이다. 당장 아시안컵 성적이 안 좋으면 '일본 우위론'은 또 등장할 것이다. 그래도 잊지는 말자. 우리가 멀찍이 숲만 보며 미래에 대해 한 마디씩 던지는 이 순간에도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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