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전에서 노출된 한국 팀의 약점

by 일로


6승 2무 2패. 클린스만 감독의 지난 평가전 성적표다. 초반 부진한 성적과 재택근무 논란으로 팀이 한 때 흔들렸으나, 이제 자리 잡은 모양새다. 6연승을 거두며 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카타르에 입성했다. 역대 최강으로 평가받는 대표팀의 멤버 수준은 팬들의 기대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 역시 자신감이 넘친다. "결승전 다음날까지 호텔을 예약해 둬라. 우승하지 못하면 나를 달나라로 날려버려도 좋다."라는 말이 이를 반영한다.

말처럼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마냥 들떠 있기엔 대표팀이 드러낸 약점이 적지 않다. 게다가 여전히 노출된 문제점을 그대로 안은 채 대회를 맞고 있다. 바레인전의 전반 경기 내용이 그랬다.


부실한 3선 빌드업


경기 초반 빌드업을 시작할 때의 모습이다. 대표팀은 당시 센터백 둘에 볼란치 하나. 즉, 2-1 빌드업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상대 공격수 하나가 우리 측 3선과 4선 사이를 오가면서 패스 길을 방해했다. 전반 내내 대표팀의 공격이 답답했던 이유다. 이미 이라크전에서도 드러난 문제였다.


4선에서 3선으로 이어지는 빌드업 전개의 핵심은 경우의 수 확보다. 볼이 통하는 경로를 최대한 많이 창출해야 한다. 3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전진이 불가능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공수가 분리될 수 있다. 지금의 2-1 빌드업이 답답하고 위험해 보였던 이유다. 경기 내내 빈약한 토대에서 빌드업이 진행됐다. 안정적인 빌드업을 위해선 3선에 수적 우위가 확보돼야 했다.



경기 초반 대표팀의 빌드업 모습. 3선에는 박용우만 위치해 있고, 그 사이를 상대의 공격수가 가로막고 있다.


깊이 올라가 있는 황인범을 박용우와 같은 선상에 배치해 2-2 빌드업을 구축하는 건 어떨까? 일시적으로 왼 편의 풀백을 끌어들여 2-3 빌드업을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흔히 말하는 인버티드 풀백이다. 그 외에도 여러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3선 빌드업이 부실하면 이것이 구조적 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3선 빌드업이 안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10번 자리에 있는 손흥민이 수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3선 자리로 끌려온다. 이러면 상대의 수비가 더 공세적으로 압박해 나올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전방에서 조규성이 싸워주고 그 틈을 손흥민이 치고 들어가는 전략도 어그러진다. 손흥민을 굳이 10번 자리에 둘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캡쳐4.png 김민재의 빌드업 장면. 5번 박용우와 6번 황인범이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다. 주력이 좋은 14번과 10번 선수를 정승현 선수 혼자 커버해야 하는 상황.


대표팀은 빌드업 난조를 역발상으로 해결했다. 김민재가 어태킹 서드까지 치고 올라가면, 여기에 맞춰 황인범과 박용우가 따라 올라간다. 상대편 수비수가 따라 들어가며 공간이 생기면, 그 자리에 이재성이 침투한다. 이러면 측면에 많은 공간이 생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김민재가 패스를 주기 위해 치고 올라올 때다. 이때 후방을 커버할 선수가 정승현 하나 뿐이었다. 공이 탈취됐으면 바로 1대 1 상황을 허용했을지 모른다. 김민재가 빌드업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너무 높은 위치에 있으면 뒷공간이 바로 노출될 수 있다. 박용우가 낮은 위치로 내려와 정승현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애매한 풀백의 위치가 불러온 ‘볼맥경화’


부실한 빌드업을 한층 부추긴 건 풀백의 애매한 포지셔닝이었다. 양측 풀백 하나가 3선에 접근해 수적 우위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오버래핑을 해서 측면 풀백을 묶어주지도 못했다.

아마 양쪽 풀백을 하프라인 부근에 배치하면 자연스레 선수들이 끌려오고 그 자리를 공략하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반 내내 바레인 선수들은 위치를 고수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재성이 7번 자리에서 페널티 박스로 부지런히 침투했다. 이재성이 왼편에서 대각선으로 침투한 게 주효했다. 상대편 선수가 결국 이재성에게 이끌리며 왼쪽 공간이 열렸다. 이 플레이가 득점으로 이어졌다.


이때 이기제 선수가 오버래핑을 적극적으로 해 줬다면 측면에서 상대편 측면 수비를 끌어내는 데 좀 더 수월했을 것이다. 사실 반대편의 설영우 선수도 마찬가지다. 조금 더 직선적으로 움직였다면, 공간이 열리면서 이강인 선수가 더 자주 왼편으로 침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끔씩이라도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그때 상대 선수들이 붙어 줘야 할지 위치를 지켜야 할지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공간은 그럴 때 생긴다.

(이 움직임을 바로잡아 주는 건 감독의 몫이다, 다행히 이 문제가 후반전 김태환의 투입으로 인해 바로잡혔다)


상대 팀 어태킹 서드 지역에서의 빌드업. 풀백이 지나치게 낮은 자리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측면에서 오버래핑이 일어나지 않자 하프스페이스에서 공격이 정체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결국 조규성이 고립됐다. 조규성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측면으로 나오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특히 왼쪽에서 이런 현상들이 자주 벌어졌다. 조규성이 측면으로 나오면 압박을 풀어 내도 득점을 해 줄 선수하나가 패널티 박스에 없다. 페널티 박스 바로 앞쪽에 서 있는 손흥민과 이강인은 돌파해야 할 선수들이 그만큼 늘어난다.


부실한 팀 압박


사실 한국의 고질적인 약점은 따로 있다. 팀 압박이다. 흔히 말하는 전방압박은 공을 가진 골키퍼나 수비수를 항해 돌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대편이 빌드업을 시작할 때 팀 전체가 움직여 경우의 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센터백이 공을 가지고 있다면 그 선수만이 아니라 바로 옆 수비수와 골키퍼, 수비형 미드필더, 측면 수비수까지 동시에 마크해야 한다. 이래야만 공이 전개되는 방향을 우리의 의도대로 제한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골대와 가까운 위치에서 공격권을 찾아올 수 있다. 이게 가능하려면 진영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마크해야 할 선수를 일사불란하게 찾아가야 한다.


팀 압박이 잘못돼서 풀려나오는 순간. 끌려 나오듯이 압박에 나선 결과 수비형 미드필드와 측면 수비수를 제때 마크하지 못했다


한국은 이렇게 조직적인 팀 압박을 하지 않는다. 최전방 공격수들이 돌격하듯이 공 가진 선수들을 따라갈 뿐이다. 이렇게 되면 뒤쪽 미드필더들이 부랴부랴 나머지 선수들을 마크하기 위해 쫓아간다. 그 사이에 가운데와 측면이 비고, 우리 진영으로 공이 전개된다. 한국은 대개 이런 식으로 위기를 맞는다.


정승현이 볼 처리를 잘 못했다? 김민재의 헤딩 클리어링이 잘못됐다? 이건 그전에 벌어진 구조적 문제를 보지 않은, 지극히 지엽적인 비판이다. 수비수는 최후의 보루다. 가장 좋은 경기 운영은 알맞은 진영을 구축해 수비수가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팀 압박은 개선이 시급하다.


비단 클린스만 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벤투호에서도 고질적으로 노출된 문제였다 (2022년 6월, 9월 A매치를 참고하길 바란다). 팀 압박이 쉽지 않다면 좁게 서서 내려앉는 것도 방법이다. 카타르 월드컵 당시 우리가 우루과이를 상대로 선전을 펼쳤던 건, 좁게 선 지역방어를 구축하며 공격당할 여지를 아예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단시간에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은 토너먼트에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일본 대표팀의 주특기가 팀 압박임을 고려하면, 이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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