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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잔 Jul 22. 2020

시급보다 시간

001

일이 줄었다. 요즘 일찍 퇴근한다. 경제가 어려운 탓인가? 잘 모르지만, 아무튼 좋다. 덕분에 사색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직한 이후로 어두운 밤중에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요즘은 하늘에 머무르는 햇살을 만끽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잔업이 없어서 생활비가 모자라면 어떡하지 십분 생각해봤다. 그런데 회사 사정은 내가 어떻게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과 사색할 시간이 늘어서 지금  상황에도 만족하며 살아갈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특히 사색의 시간은 놓칠 수 없는 일정이 되었다. 이때야말로 더 충만한 삶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반성하고 내일부터 나의 삶이 걸어갈 방향을 조율한다. 삶에서 사색이 사라진다면 나는 앞으로 더 좋은 삶을 기획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색적 요소가 추방되어버린 삶은 치명적인 과잉활동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위 속에서 질식할 것이다. 사색적 삶을 되살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삶만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병철, 『시간의 향기-머무름의 기술』, 문학과지성사, 2013, p.181



퇴근길에 이런 생각이 어김없이 마중 나온다.


'하루가 이렇게 지나갔네.'


언뜻 보면 노동의 보람을 예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정신없이 지나가버린 삶을 향한 푸념 섞인 마음의 소리다. 일찍 퇴근하는 요즘, 나는 떠올렸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것은 일이 아닌 안식임을. 시급이 아닌 시간임을.


생계를 위해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지만, 나는 일하는 동물이 아니라 시간을 향유할 수 있는 존재다. 자기 자신과의 투쟁 상태에 놓인 피로사회에서 나만의 출구를 찾는 일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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