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잔 Oct 25. 2020

뜨거운 커피는 어쩌다 식었을까

003

처갓집 문을 나섰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섰다. 찬바람이 지나가면서 내 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다. 눈이 번쩍 뜨였다. 바람이 지나가니 다시 눈이 감겼다.


커피가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페에 들렀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인 아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내가 말했다.


“뜨거운 커피? 운전할 때는 못 마시잖아.”

“괜찮아. 조금씩 식으니까.”


차에 탔다. 운전하는 동안에는 좀처럼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너무 뜨거웠다. ‘아아! 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실 걸!’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

“왜?”

“교회 가기 싫다!”


다음을 잇지 못했다. 아내의 기분이 어떨지 알고 있다. 그런데 제시할 만한 대책은 없다.



직장을 옮긴 뒤, 고향에 내려와서 생활하게 된 지 반년이 됐다. 고향에서 반 평생을 자라온 나의 경우는 말할 것이 없지만, 아내 역시 잘 적응한 편이다.


생활권 주변에 여러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적성에 맞는 일자리도 구했다. 덕분에 아내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는 편이다. 한 가지, 교회 문제만 뺀다면.


지난날 동안 숫하게 아내에게 역설했다. 엄마와 함께 교회를 다녀서는 안 된다고. 엄마의 슬하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어른이 아니라, 주일학교 학생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나는 엄마에게 매주마다 출석체크를 당해야 하는 아이가 되고, 너는 권사의 며느리가 된다. 성인으로서 독립적인 신앙생활이라든지, 교회 안에서 신과의 관계에 관해 깊이 고찰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것은 결코 보장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일러주었다.


내가 몸담았던 교회지만, 나는 안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 눈치 볼 필요 없이 우리 둘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내였다.


몸담았던 교회를 두고 멀리 가는 것은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또, 부모님께 잘해야 한다, 효도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가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큰 부담감을 안겨준 것은 교회에 퍼진 소문이었다.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소문이 우리가 오기도 전에 교회에 퍼져 있었다. 근원지는 엄마였다.


결국 우리는 엄마의 교회에 가게 됐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엄마가 소속된 교육부서의 피아노 반주자로 봉사하게 됐다.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이 모든 상황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아내가 자원했다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잠시 동안이었지만 아내도 나름대로 의욕을 보였다. 맨 처음 아내의 눈동자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담겨있었다. 그때는 식을 줄 모르는 열의로 가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아내는 속박의 구렁텅이에서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모양이다. 시댁과 교회가 합쳐져서 막강한 족쇄가 됐다.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그 마음을 금방 식게 만드는 한겨울의 추위가 교회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내가 마시고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차가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내의 마음은 식도로 넘어가는 차가운 음료를 꽁꽁 얼릴 정도다. 그런데 교회도, 엄마도 얼어붙어 있는 아내의 중심을 보지 못했다.



깊이 생각하던 중에 집에 도착했다. 나는 그제야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커피다. 뱉고 싶은 맛이었다. 처음에는 뜨거웠는데, 어쩌다 이렇게 식었을까.


계절의 끝자락에서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그것을 바라보는 행인은 떠올렸다. 풍성한 잎사귀들로 푸른 여름을 불사르던 나무의 옛 모습을. ⓒ타잔


교회에 갈 준비를 하던 중에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제 오니?’

“지금.”

‘빨리 와라. 10분 전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교회에 가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아내는 반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에 가야했다. 그 기분은 찌그러진 미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아내는 ‘착한 며느리 가면’을 썼다. 애써 웃는 표정이 됐다. 그런데 왠지 오늘 아내가 연주하는 피아노에서 꽹과리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아내가 집을 나섰다. 한 손에는 성경책을, 한 손에는 커피를 들었다. 아직 녹지 않은 얼음들이 서로 부딪히며 귀 간지러운 소리를 냈다. 교회의 온도보다는 훨씬 따뜻한, 한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내의 기분을 조율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아내를 배웅하고서 식어버린 커피를 싱크대에 부어 버렸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식어버렸을까. 차라리 다음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야겠다. 차든지, 뜨겁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시험 치는 것 같은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